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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55호

풍양사 (楓陽祠)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일원(417㎡)
지정(등록)일 2000.06.23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대강면 곡촌안길 34-18 (풍산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조선시대 무신인 박세중(1595∼?)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박세중은 광해군 11년(1618) 무과에 급제하고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1등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 왕이 공주로 피신할 때 옥쇄를 안전하게 보관하여 2등공신에 녹훈되고 충주부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대항했으나 임금이 강화에서 중국 청나라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건물은 숙종 12년(1685) 세우고, 고종 43년(1905) 고쳐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조선중기의 사회상을 연구할 수 있는 6권의 『박세중가전고문서』(유형문화재 제147호)를 함께 보관하고 있다.

조선시대 무신인 박세중(1595∼?)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박세중은 광해군 11년(1618) 무과에 급제하고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1등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 왕이 공주로 피신할 때 옥쇄를 안전하게 보관하여 2등공신에 녹훈되고 충주부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대항했으나 임금이 강화에서 중국 청나라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건물은 숙종 12년(1685) 세우고, 고종 43년(1905) 고쳐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조선중기의 사회상을 연구할 수 있는 6권의 『박세중가전고문서』(유형문화재 제147호)를 함께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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