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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154호

남천사 (藍川祠)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일원(972㎡)
지정(등록)일 2000.06.23
소 재 지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844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조선 중기 문신인 손홍록과 안의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40일 만에 평양, 서울, 경주가 함락되는 등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때 두 분은 머뭇거리던 관아 사람들을 설득하여 당시 전주사고에서 보관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경기전에 모시고 있던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내장산의 동굴로 옮겨 놓았다. 그 후 강화를 거쳐 묘향산까지 옮겨가며 전쟁 기간인 7년동안 이것들을 지켰다. 후대 조병희 선생은 이들의 이런 노력은 10만 대군을 물리친 공에 버금가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당시 실록은 서울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 4곳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3곳은 모두 불타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의 실록은 역사의 단절을 막고 조선 전기 방대한 역사의 맥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게 하였다.

이곳은 숙종 2년(1676) 세워 손홍록·안의 두 사람과 함께 김후진·김만연의 위패도 함께 모셨으며, 그 뒤 흥선대원군 때 훼손되었다가 1926년 김두헌을 추가로 모셔 다시 고쳐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손홍록과 안의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40일 만에 평양, 서울, 경주가 함락되는 등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때 두 분은 머뭇거리던 관아 사람들을 설득하여 당시 전주사고에서 보관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경기전에 모시고 있던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내장산의 동굴로 옮겨 놓았다. 그 후 강화를 거쳐 묘향산까지 옮겨가며 전쟁 기간인 7년동안 이것들을 지켰다. 후대 조병희 선생은 이들의 이런 노력은 10만 대군을 물리친 공에 버금가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당시 실록은 서울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 4곳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3곳은 모두 불타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의 실록은 역사의 단절을 막고 조선 전기 방대한 역사의 맥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게 하였다.

이곳은 숙종 2년(1676) 세워 손홍록·안의 두 사람과 함께 김후진·김만연의 위패도 함께 모셨으며, 그 뒤 흥선대원군 때 훼손되었다가 1926년 김두헌을 추가로 모셔 다시 고쳐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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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전북 정읍시 문화예술과 063-539-5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