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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63호

송시열 초상 (宋時烈 肖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정(등록)일 2008.07.25
소 재 지 충북 옥천군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초상으로 현재 선산곽씨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숙종 정축년(1697)에 영당을 세우고 서당을 齋舍로 하였다는 崇禎五癸未年(1943)에 宋近洙가 쓴 <龍門書堂禊座目>의 기록과 庚申年(1920?)에 龍門書堂을 중수하고 쓴 郭守煥의 <龍門書堂重修記>에 원래의 서당 동쪽에 祠宇를 건립하여 眞像을 봉안하고 서당을 齋室로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697년경에 제작된 초상이 있었음이 분명하나 원래의 초상인지는 알 수 없다. <龍門書堂禊座目>에는 또 "堂中舊蹟, 有創設以後名案一冊, 而祠中所傳御筆大老祠碑帖及影堂扁額, 藏奉於此"라 하였을 뿐 이전의 眞像에 대한 언급이 없어 처음의 초상이 다시 봉안되었는지, 혹은 다시 제작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宋時烈의 사후 그를 추모하여 받드는 수많은 影堂과 書院이 건립되어 초상이 봉안, 향사되었는데 옥천의 龍門影堂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 士大夫畵像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송시열 초상은 선생 생시에 그린 3본의 眞像을 典型으로 하는 많은 移模本이 제작되었으며 옥천에 전하는 그림은 현재까지 전하는 다섯 가지 본 중의 하나이다.

비단바탕에 채색을 사용한 반신상으로 세로 97cm, 세로 57cm이며 액자로 배첩하여 보관하고 있다. 바탕이 여러 군데 꺾어지고 채색이 박락되는 등 전체적으로 손상이 많아 보존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특히 그림 아래 부분의 박락이 심하며 얼굴의 눈 부분이 많이 손상되었다.

옥천 선산 곽씨 종중 소장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전체적인 상용에 四方帽를 쓴 堤川 黃江影堂 소장본의 얼굴묘사, 그리고 深衣의 襈과 소매의 선이 X자를 이루는 복식의 표현방법을 모방하여 두 가지 본을 합성한 흥미로운 예로 주목된다. 거칠고 짙은 눈썹, 하얀 수염을 비롯하여 갈색 선으로 묘사한 주름까지 충실하게 모사하였으며 주름 선으로 울퉁불퉁한 골격을 표현하고 渲染을 더하여 엄격한 유학자의 성격과 풍모를 잘 드러내었다. 이처럼 선의 표현적 기능이 강조된 안면묘사는 17세기 말엽 초상화 양식의 특징이다.

1697년 용문영당을 건립하였을 당시 화가가 국립박물관본과 堤川 黃江影堂본을 합성하여 초상을 제작하였고 현재 옥천 소장본은 그것을 그대로 임모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초상의 실제 제작 시기는 1871년 사당이 훼손된 후 용문서당이 중수된 즈음의 시기로 여겨진다. 移模本이지만 像主의 품격을 잘 드러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초상으로 현재 선산곽씨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숙종 정축년(1697)에 영당을 세우고 서당을 齋舍로 하였다는 崇禎五癸未年(1943)에 宋近洙가 쓴 <龍門書堂禊座目>의 기록과 庚申年(1920?)에 龍門書堂을 중수하고 쓴 郭守煥의 <龍門書堂重修記>에 원래의 서당 동쪽에 祠宇를 건립하여 眞像을 봉안하고 서당을 齋室로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697년경에 제작된 초상이 있었음이 분명하나 원래의 초상인지는 알 수 없다. <龍門書堂禊座目>에는 또 "堂中舊蹟, 有創設以後名案一冊, 而祠中所傳御筆大老祠碑帖及影堂扁額, 藏奉於此"라 하였을 뿐 이전의 眞像에 대한 언급이 없어 처음의 초상이 다시 봉안되었는지, 혹은 다시 제작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宋時烈의 사후 그를 추모하여 받드는 수많은 影堂과 書院이 건립되어 초상이 봉안, 향사되었는데 옥천의 龍門影堂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 士大夫畵像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송시열 초상은 선생 생시에 그린 3본의 眞像을 典型으로 하는 많은 移模本이 제작되었으며 옥천에 전하는 그림은 현재까지 전하는 다섯 가지 본 중의 하나이다.

비단바탕에 채색을 사용한 반신상으로 세로 97cm, 세로 57cm이며 액자로 배첩하여 보관하고 있다. 바탕이 여러 군데 꺾어지고 채색이 박락되는 등 전체적으로 손상이 많아 보존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특히 그림 아래 부분의 박락이 심하며 얼굴의 눈 부분이 많이 손상되었다.

옥천 선산 곽씨 종중 소장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전체적인 상용에 四方帽를 쓴 堤川 黃江影堂 소장본의 얼굴묘사, 그리고 深衣의 襈과 소매의 선이 X자를 이루는 복식의 표현방법을 모방하여 두 가지 본을 합성한 흥미로운 예로 주목된다. 거칠고 짙은 눈썹, 하얀 수염을 비롯하여 갈색 선으로 묘사한 주름까지 충실하게 모사하였으며 주름 선으로 울퉁불퉁한 골격을 표현하고 渲染을 더하여 엄격한 유학자의 성격과 풍모를 잘 드러내었다. 이처럼 선의 표현적 기능이 강조된 안면묘사는 17세기 말엽 초상화 양식의 특징이다.

1697년 용문영당을 건립하였을 당시 화가가 국립박물관본과 堤川 黃江影堂본을 합성하여 초상을 제작하였고 현재 옥천 소장본은 그것을 그대로 임모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초상의 실제 제작 시기는 1871년 사당이 훼손된 후 용문서당이 중수된 즈음의 시기로 여겨진다. 移模本이지만 像主의 품격을 잘 드러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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