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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55호

옥천 송갑조 유기비 (沃川 宋甲祚 遺基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2006.04.07
소 재 지 충북 옥천군
시 대 일제강점기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비는 송갑조(1574-1628)가 살던 집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1914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송갑조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은진이며 자는 원유元裕호는 수옹遁翁이고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이다 그는 1617년(광해군 9)에 사마시t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인목 대비의 유폐를 반대 하다가 유생의 명단에서 삭제되어

벼슬길이 막히었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때 강릉 참봉을 지냈으며 다음 해 이괄의 난 때 공주公州로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 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 사이에 화의가 성립 되자 분개하여 벼슬을 버렸다. 송갑조는 본래 회덕에 살았는데 1594년(선조27)에 이곳으로 이사히며 선산 곽씨와 결혼하여 시열을 낳았다. 비석은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을 갖춘 일반형으로 크기는 높이 116cm 폭 38cm 두께 20Cm이다

이 비는 송갑조(1574-1628)가 살던 집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1914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송갑조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은진이며 자는 원유元裕호는 수옹遁翁이고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이다 그는 1617년(광해군 9)에 사마시t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인목 대비의 유폐를 반대 하다가 유생의 명단에서 삭제되어

벼슬길이 막히었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때 강릉 참봉을 지냈으며 다음 해 이괄의 난 때 공주公州로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 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 사이에 화의가 성립 되자 분개하여 벼슬을 버렸다. 송갑조는 본래 회덕에 살았는데 1594년(선조27)에 이곳으로 이사히며 선산 곽씨와 결혼하여 시열을 낳았다. 비석은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을 갖춘 일반형으로 크기는 높이 116cm 폭 38cm 두께 2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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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충북 옥천군 문화공보실 043-730-3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