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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9호

강릉효자리비 (江陵孝子里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강***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강원도 강릉시 문화예술과 033-640-5118

강릉 옥천동에 자리잡은 작은 비각안에 서 있는 비로, 조선 중종 때의 사람인 김덕장의 효행과 덕을 기리고 있다.

김덕장은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묘곁에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그 때 산불이 나서 불이 묘에 까지 닿게 되자 통곡을 하며 하늘을 향해 빌었다. 그러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산불이 꺼지게 되었다. 조정은 그의 이러한 효성을 듣고 정려문을 내려주어 ‘효우당(孝友堂)’이라 이름하도록 하고, 마을 이름을 ‘효자리’라 내리었다. 김덕장은 또한 이 일대가 흉년이 들 때마다 자신의 창고문을 열어 어려운 이들을 구해 주었는데, 선조 11년(1578) 그를 표창하는 정려각을 내리고, 선조 23년(1590)에는 평강현 훈도에 임명하였다가 호조참판에 증직하였다.

지금은 정려각은 없어지고, 그의 후손들이 세운 이 비만 남아 있다. 거칠게 다듬어 놓은 길쭉한 모습으로, 앞면에는 ‘효자리’라는 비의 명칭을 세로로 큼직하게 새겼다. 비를 모신 비각에는 율곡 이이, 옥산 이우, 봉래 양사언이 읊은 효우당시가 함께 전하고 있다.

강릉 옥천동에 자리잡은 작은 비각안에 서 있는 비로, 조선 중종 때의 사람인 김덕장의 효행과 덕을 기리고 있다.

김덕장은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묘곁에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그 때 산불이 나서 불이 묘에 까지 닿게 되자 통곡을 하며 하늘을 향해 빌었다. 그러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산불이 꺼지게 되었다. 조정은 그의 이러한 효성을 듣고 정려문을 내려주어 ‘효우당(孝友堂)’이라 이름하도록 하고, 마을 이름을 ‘효자리’라 내리었다. 김덕장은 또한 이 일대가 흉년이 들 때마다 자신의 창고문을 열어 어려운 이들을 구해 주었는데, 선조 11년(1578) 그를 표창하는 정려각을 내리고, 선조 23년(1590)에는 평강현 훈도에 임명하였다가 호조참판에 증직하였다.

지금은 정려각은 없어지고, 그의 후손들이 세운 이 비만 남아 있다. 거칠게 다듬어 놓은 길쭉한 모습으로, 앞면에는 ‘효자리’라는 비의 명칭을 세로로 큼직하게 새겼다. 비를 모신 비각에는 율곡 이이, 옥산 이우, 봉래 양사언이 읊은 효우당시가 함께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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