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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2호

영동 모의당 (永同 慕義堂)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02.01.11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심천면 양산심천로 802-42 (기호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성산배씨참의공파기호종중

선대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의 강학 공간으로 지은 강당건물이다. 모의당은 회봉공(晦峰公) 배후도(裵後度)의 후손들이 조선 영조 1년(1725)에 지어 돈화재(敦話齋)라 이름하였다. 순조 15년(1815)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철종 3년(1852)에 이름을 모의(慕義)로 바꾸었다. 모의당(慕義堂)이라는 이름은 1856년에 붙여진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1899년에 지은 것으로 그 후 두차례에 걸쳐 고쳐 지어졌다.

앞면 4칸 반·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루마루방이 있고 왼쪽은 2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의당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건축양식이 서당 성격과 같은 요소가 있어 서당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선대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의 강학 공간으로 지은 강당건물이다. 모의당은 회봉공(晦峰公) 배후도(裵後度)의 후손들이 조선 영조 1년(1725)에 지어 돈화재(敦話齋)라 이름하였다. 순조 15년(1815)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철종 3년(1852)에 이름을 모의(慕義)로 바꾸었다. 모의당(慕義堂)이라는 이름은 1856년에 붙여진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1899년에 지은 것으로 그 후 두차례에 걸쳐 고쳐 지어졌다.

앞면 4칸 반·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루마루방이 있고 왼쪽은 2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의당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건축양식이 서당 성격과 같은 요소가 있어 서당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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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영동군 문화공보과 043-740-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