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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2호

칠성당지석묘군 (七星堂支石墓群)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지석묘
수량/면적 7기
지정(등록)일 1992.07.22
소 재 지 대전 유성구 교촌동 산7-1번지
시 대 선사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학교법인동아학원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화관광과 042-611-2078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대전 유성구 교촌동의 마을 뒷산에 있는 남방식 고인돌로 모두 7기가 밀집되어 있다. 이 고인돌은 작은 것은 길이 1m, 큰 것은 약 7m로 다양하며, 일부는 받침돌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다.

옛날에 아기를 낳지 못한 한 여인이 북두칠성 모양을 한 7개의 바위들을 발견하고 백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 낳기를 빌어 얼마 후에 아들을 낳아 소원을 성취했다는 내용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바위들이 대단한 영험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되었고, 칠성바위를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무사태평과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 고인돌군은 반경 2∼3㎞ 안에 있는 원내동과 대정동 일원의 고인돌들과 함께 대전 지역의 청동기시대 무덤 양식 및 생활 양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대전 유성구 교촌동의 마을 뒷산에 있는 남방식 고인돌로 모두 7기가 밀집되어 있다. 이 고인돌은 작은 것은 길이 1m, 큰 것은 약 7m로 다양하며, 일부는 받침돌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다.

옛날에 아기를 낳지 못한 한 여인이 북두칠성 모양을 한 7개의 바위들을 발견하고 백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 낳기를 빌어 얼마 후에 아들을 낳아 소원을 성취했다는 내용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바위들이 대단한 영험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되었고, 칠성바위를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무사태평과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 고인돌군은 반경 2∼3㎞ 안에 있는 원내동과 대정동 일원의 고인돌들과 함께 대전 지역의 청동기시대 무덤 양식 및 생활 양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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