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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29호

부안군이석수묘역 (扶安君李碩壽墓域)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수량/면적 분묘 2基, 석물 6基, 토지 321㎡
지정(등록)일 2005.09.15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묘역은 조선 제 9대왕인 성종(成宗)의 손자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로로 선무종훈(宣武從勳)된 바 있는 부안군(扶安君) 이석수(李碩壽:1524년~1598년)의 분묘와 그 부인인 현부인(縣夫人) 평강채씨(平康蔡氏)의 분묘가 자리한 묘역으로 현재 동작동 국립현충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부안군 이석수는 성종과 명빈김씨(明嬪金氏)와의 사이에 난 무산군(茂山君)의 아들로 중종 19년(1524) 태어나 선조 31년(1598) 세상을 떠났다. 처음 창선대부(彰善大夫) 부안정(扶安正)을 제수 받았으나 갑진년에 혼전(魂殿)에 입직한 공로로 명선대부(明善大夫) 도정(都正)을 제수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하여 선무종훈(宣武從勳)되었다.

묘역은 그가 세상을 떠난 1598년 경 최초 조성되었을 것이나 묘비가 영조 3년(1727)세워진 것으로 보아 이 묘비가 세워질 무렵 재정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묘역 내에는 부안군 이석수의 묘와 그배위 현부인 평강채씨의 묘 외에도 그손자인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縣夫人) 남원윤씨(南原尹氏)의 묘 등 총 4기의 분묘와 석물 6기가 자리하고 있다.

부안군과 평강채씨의 묘는 순안군과 남원윤씨의 묘 아래쪽으로 단차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묘 뒤쪽으로는 사성(莎城)이 조성되어 분묘를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며 용미(龍尾)가 조성되어 있다. 묘비에 따르면 부안군이 향좌측(向左側)에, 평강채씨가 향우측(向右側)에 자리하고 있다.

묘 앞에는 계체석(階砌石)을 기준으로 볼 때 묘비(墓碑)・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 등이 계체석 위쪽(‘上階砌’라 한다.)으로 놓여 있고, 향로석(香爐石)이 상석에 붙어 계체석 아래쪽(‘下階砌’라 한다)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계체석 아래에는 문인석 2기가 각각 좌・우 1기씩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이나 장명등 등의 석물은 없다.

부안군의 묘와 평강채씨의 묘 앞 중간에 세워진 묘비는 농대가첨석(籠臺加檐石) 양식으로 비 몸돌을 직육면체의 대좌(‘方趺’라 한다) 위에 끼우고 이 위에 한옥 지붕 모양의 돌(‘屋蓋石’이라고 한다)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문인석은 좌우 모두 금관 조복을 착용 하고 손에는 홀(笏)을 든 모습인데 얼굴 부분의 마모가 심한 편이다.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 남원윤씨, 여흥민씨 묘는 봉분이 많이 허물어져 있고 석물이 없다.

이 묘역은 조선 제 9대왕인 성종(成宗)의 손자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로로 선무종훈(宣武從勳)된 바 있는 부안군(扶安君) 이석수(李碩壽:1524년~1598년)의 분묘와 그 부인인 현부인(縣夫人) 평강채씨(平康蔡氏)의 분묘가 자리한 묘역으로 현재 동작동 국립현충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부안군 이석수는 성종과 명빈김씨(明嬪金氏)와의 사이에 난 무산군(茂山君)의 아들로 중종 19년(1524) 태어나 선조 31년(1598) 세상을 떠났다. 처음 창선대부(彰善大夫) 부안정(扶安正)을 제수 받았으나 갑진년에 혼전(魂殿)에 입직한 공로로 명선대부(明善大夫) 도정(都正)을 제수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하여 선무종훈(宣武從勳)되었다.

묘역은 그가 세상을 떠난 1598년 경 최초 조성되었을 것이나 묘비가 영조 3년(1727)세워진 것으로 보아 이 묘비가 세워질 무렵 재정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묘역 내에는 부안군 이석수의 묘와 그배위 현부인 평강채씨의 묘 외에도 그손자인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縣夫人) 남원윤씨(南原尹氏)의 묘 등 총 4기의 분묘와 석물 6기가 자리하고 있다.

부안군과 평강채씨의 묘는 순안군과 남원윤씨의 묘 아래쪽으로 단차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묘 뒤쪽으로는 사성(莎城)이 조성되어 분묘를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며 용미(龍尾)가 조성되어 있다. 묘비에 따르면 부안군이 향좌측(向左側)에, 평강채씨가 향우측(向右側)에 자리하고 있다.

묘 앞에는 계체석(階砌石)을 기준으로 볼 때 묘비(墓碑)・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 등이 계체석 위쪽(‘上階砌’라 한다.)으로 놓여 있고, 향로석(香爐石)이 상석에 붙어 계체석 아래쪽(‘下階砌’라 한다)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계체석 아래에는 문인석 2기가 각각 좌・우 1기씩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이나 장명등 등의 석물은 없다.

부안군의 묘와 평강채씨의 묘 앞 중간에 세워진 묘비는 농대가첨석(籠臺加檐石) 양식으로 비 몸돌을 직육면체의 대좌(‘方趺’라 한다) 위에 끼우고 이 위에 한옥 지붕 모양의 돌(‘屋蓋石’이라고 한다)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문인석은 좌우 모두 금관 조복을 착용 하고 손에는 홀(笏)을 든 모습인데 얼굴 부분의 마모가 심한 편이다.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 남원윤씨, 여흥민씨 묘는 봉분이 많이 허물어져 있고 석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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