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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27호

사신당 무신도 및 현판 일괄 (使臣堂 巫神圖 및 懸板 一括)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기타종교회화 / 무속화 / 무속화
수량/면적 5점
지정(등록)일 2005.02.11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시 대 기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사신당(使臣堂)이라는 명칭은 당(堂)이 홍제동에 있을 당시 중국 사신들이 서울로 무사히 들어오기 위해 굿을 한 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왕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1889년 제작 봉축현판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왕실 관련 인사들도 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신당(使臣堂)에는 현재 64점의 무신도(巫神圖)가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19c~20c에 걸쳐 제작된 그림들로 당(堂) 건립내력과 이름에 걸맞게 〈중국사신도(中國使臣圖)〉가 모셔져 있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신당의 무신도는 〈중국사신도(中國使臣圖)〉․ 〈삼불제석도(三佛帝釋圖)〉․〈최영장군도 (崔塋將軍圖)〉․〈뒤주대왕도〉등 4점이다.

〈중국사신도(中國使臣圖)는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중국 사신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삼불제석도(三佛帝釋圖)〉는 인간에게 재복(財福)을 주고 수명을 길게 해주며 잉태를 담당하는 삼불제석(三佛帝釋)을 그린 것이다.

〈최영장군도(崔塋將軍圖)〉는 고려 말기의 명장(名將)으로 후에 신격화되어 수명장수(壽命長壽)와 태평(太平)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최영(崔塋 :1326년~1388년)장군을 그린 것이다. 최영장군은 특히 서울,경기 지역에서 가장 영험한 신 중의 하나로 모셔 지고 있다.

〈뒤주대왕도〉는 뒤주 속에 갇혀 불행 하게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신격화된 뒤주대왕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봉축현판〉은 1889년 제작된 것으로 고종, 명성왕후, 대왕대비, 세자, 세자빈, 흥선대원군, 부대부인 등의 만수무강을 기원 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사신당(使臣堂)이라는 명칭은 당(堂)이 홍제동에 있을 당시 중국 사신들이 서울로 무사히 들어오기 위해 굿을 한 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왕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1889년 제작 봉축현판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왕실 관련 인사들도 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신당(使臣堂)에는 현재 64점의 무신도(巫神圖)가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19c~20c에 걸쳐 제작된 그림들로 당(堂) 건립내력과 이름에 걸맞게 〈중국사신도(中國使臣圖)〉가 모셔져 있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신당의 무신도는 〈중국사신도(中國使臣圖)〉․ 〈삼불제석도(三佛帝釋圖)〉․〈최영장군도 (崔塋將軍圖)〉․〈뒤주대왕도〉등 4점이다.

〈중국사신도(中國使臣圖)는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중국 사신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삼불제석도(三佛帝釋圖)〉는 인간에게 재복(財福)을 주고 수명을 길게 해주며 잉태를 담당하는 삼불제석(三佛帝釋)을 그린 것이다.

〈최영장군도(崔塋將軍圖)〉는 고려 말기의 명장(名將)으로 후에 신격화되어 수명장수(壽命長壽)와 태평(太平)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최영(崔塋 :1326년~1388년)장군을 그린 것이다. 최영장군은 특히 서울,경기 지역에서 가장 영험한 신 중의 하나로 모셔 지고 있다.

〈뒤주대왕도〉는 뒤주 속에 갇혀 불행 하게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신격화된 뒤주대왕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봉축현판〉은 1889년 제작된 것으로 고종, 명성왕후, 대왕대비, 세자, 세자빈, 흥선대원군, 부대부인 등의 만수무강을 기원 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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