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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26호

청주 것대산 봉수 (淸州 巨叱大山 烽燧)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수량/면적 1곽
지정(등록)일 1998.11.20
소 재 지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산107-2번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청주시 문화예술과 043-201-2023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경남 남해의 금산 봉수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중간 길목에 자리잡은 이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문의 소이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 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거차대 봉수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서에는 거질대산봉수라고 적혀있다.

봉수대가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봉수제도가 마련된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조선 고종 31년(1895) 봉수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그 기능을 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긴 타원모양으로, 둘레에 보호벽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무덤 1기가 봉수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성의 주변을 살펴 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인 봉돈은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경남 남해의 금산 봉수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중간 길목에 자리잡은 이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문의 소이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 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거차대 봉수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서에는 거질대산봉수라고 적혀있다.

봉수대가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봉수제도가 마련된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조선 고종 31년(1895) 봉수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그 기능을 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긴 타원모양으로, 둘레에 보호벽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무덤 1기가 봉수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성의 주변을 살펴 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인 봉돈은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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