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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김취려 묘 (金就礪 墓)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수량/면적 1기(11,107㎡)
지정(등록)일 2010.12.06
소 재 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 71
소유자(소유단체) 언양김씨대종회 
관리자(관리단체) 언양김씨대종회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예술과 032-930-3627
문화재 설명

고려 후기의 장군 김취려의 묘이다. 그는 고려 후기 예부시랑을 지낸 김부(金富)의 아들로 본관은 언양이며, 음서(蔭敍)를 통해서 정위(正尉)에 임명되었다. 1216년 거란군이 청천강 북쪽을 약탈하자 장군은 앞장서서 싸웠다. 1217년 5월 거란군이 한강 이남을 공격하자 박달재에서 크게 무찔렀다. 1218년 7월에도 거란군의 침략을 막았고, 이듬해 2월에는 마침내 강동성(江東城)을 함락하고, 거란군을 완전히 무찔렀다. 1232년에는 벼슬이 최고관직인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올랐으며, 위열공(威烈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사람됨이 정직하고 검소하였으며, 아랫사람을 바르게 다스려 누구도 그를 속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종 21년(1234) 강화에서 사망하였다. 김취려 묘지석에는 ‘공은 갑오년(고종 21, 1234) 2월 14일에 미미한 병세를 보이다가 21일에 갑자기 돌아가시니 향년 63세이다. 천자(天子)께서는 몹시 슬퍼하며 조문하고 부의를 내리셨다. 공은 복야(僕射) 조언통(趙彦通)의 따님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시고 뒷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7월 12일에 진강산(鎭江山) 대곡동(大谷洞) 서쪽 기슭에 예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묘지석이 발견된 곳에 강화군과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묘소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묘역에는 원형의 봉분 앞에 망주석 한 쌍과 상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하단 부분에 묘역을 정비하고 종친회에서 건립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사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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