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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22호

신안서원 (新安書院)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 447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한도수

주희와 신재 한호겸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한호겸은 성리학자로서 항상 주희의 영정을 모셔왔는데, 그가 죽은 뒤 조선 선조 21년(1588)에 제자들이 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신안사라는 사당을 짓고 주희와 그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불탄 것을 현종 10년(1669)에 다시 세웠고, 순조 19년(1819)에는 나라의 지원을 받는 사액서원이 되어 이름도 신안서원로 바뀌었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58년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 안에 있는 건물로는 사당, 강당, 동재, 신문, 고사, 창고, 대문 등이 있다.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현재 이곳에는 주희를 중심으로 이서·송경원·한호겸·한필성·강백진·한명유·송시열·김수근 등을 모시고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주희와 신재 한호겸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한호겸은 성리학자로서 항상 주희의 영정을 모셔왔는데, 그가 죽은 뒤 조선 선조 21년(1588)에 제자들이 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신안사라는 사당을 짓고 주희와 그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불탄 것을 현종 10년(1669)에 다시 세웠고, 순조 19년(1819)에는 나라의 지원을 받는 사액서원이 되어 이름도 신안서원로 바뀌었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58년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 안에 있는 건물로는 사당, 강당, 동재, 신문, 고사, 창고, 대문 등이 있다.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현재 이곳에는 주희를 중심으로 이서·송경원·한호겸·한필성·강백진·한명유·송시열·김수근 등을 모시고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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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전북 임실군 문화관광과 063-640-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