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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9호

백사 이항복 집터(필운대) (백사 이항복 집터(弼雲臺))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조각 / 암벽조각 / 각석
수량/면적 각자바위 1基,토지 237.6㎡
지정(등록)일 2000.07.15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시대미상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종***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문화과 02-2148-1823

배화여고 뒷정원에는 높다란 암벽이 있는데 그 왼쪽면에 ‘필운대(弼雲臺)’라는 글씨를 세로로 새기고, 가운데에는 몇줄의 싯구를 적어 놓았으며, 오른쪽으로는 아홉 사람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필운은 이곳에 살았었던 이항복 선생의 호이다. 선생은 조선 선조 때에 대제학을 지내었으며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 청백리에 뽑히기도 하였다. 가운데의 글은 선생의 후손인 이유원이 이 터에 들른 후 그 느낌을 글로 지어 새긴 것이고, 오른쪽에 있는 명단은 선생의 집을 지을 때 관련되었던 사람들로 추측되고 있다.

이유원의 글은 고종 10년(1889)에 새긴 것으로, ‘필운대’라는 글씨 또한 이항복의 글씨라기보다는 이유원의 글씨로 추측된다. 오른쪽의 명단은 이보다 앞선 순조 13년(1813) 또는 고종 10년(1873)에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시대는 내려가지만 명필이었던 이유원의 서체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항복 선생의 옛 자취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배화여고 뒷정원에는 높다란 암벽이 있는데 그 왼쪽면에 ‘필운대(弼雲臺)’라는 글씨를 세로로 새기고, 가운데에는 몇줄의 싯구를 적어 놓았으며, 오른쪽으로는 아홉 사람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필운은 이곳에 살았었던 이항복 선생의 호이다. 선생은 조선 선조 때에 대제학을 지내었으며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 청백리에 뽑히기도 하였다. 가운데의 글은 선생의 후손인 이유원이 이 터에 들른 후 그 느낌을 글로 지어 새긴 것이고, 오른쪽에 있는 명단은 선생의 집을 지을 때 관련되었던 사람들로 추측되고 있다.

이유원의 글은 고종 10년(1889)에 새긴 것으로, ‘필운대’라는 글씨 또한 이항복의 글씨라기보다는 이유원의 글씨로 추측된다. 오른쪽의 명단은 이보다 앞선 순조 13년(1813) 또는 고종 10년(1873)에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시대는 내려가지만 명필이었던 이유원의 서체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항복 선생의 옛 자취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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