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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서생포왜성 (西生浦倭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151,934㎡
지정(등록)일 1997.10.30
소 재 지 울산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번지 일원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울주군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울산광역시 울주군 문화관광과 052-204-0324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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