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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울산왜성 (蔚山倭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59,678㎡
지정(등록)일 1997.10.30
소 재 지 울산 중구 학성공원3길 54, 일원 (학성동)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중구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울산광역시 중구 문화체육과 052-290-3660

울산광역시 학성동에 있는 이 성은 신라의 계변성이라 불리던 성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새로 쌓은 왜성으로, 우리측에서는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하여 도산성이라 불렀다.

선조 30년(1597)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왜군은 우리군과 명나라 연합군에 밀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식량이 없어 소변을 마시고 말을 잡아먹으면서도 성을 지킨 왜군은 구원병이 오자 성벽을 3중으로 쌓아 수비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듬해(1598) 2차 전투에서 패한 왜군은 밤에 성을 불태우고 후퇴하였다.

이 성은 산정상을 중심으로 본성을 두고, 북쪽과 서북쪽에 2∼3겹으로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의 길이는 1.300m이고 높이는 10∼15m이다. 여기에 망을 보기 위해 높이 지은 망루 12개를 만들었으며, 남쪽을 제외한 3면에 흙으로 제방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였다. 남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배가 성 아래까지 들어와 정박할 수 있었다.

울산광역시 학성동에 있는 이 성은 신라의 계변성이라 불리던 성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새로 쌓은 왜성으로, 우리측에서는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하여 도산성이라 불렀다.

선조 30년(1597)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왜군은 우리군과 명나라 연합군에 밀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식량이 없어 소변을 마시고 말을 잡아먹으면서도 성을 지킨 왜군은 구원병이 오자 성벽을 3중으로 쌓아 수비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듬해(1598) 2차 전투에서 패한 왜군은 밤에 성을 불태우고 후퇴하였다.

이 성은 산정상을 중심으로 본성을 두고, 북쪽과 서북쪽에 2∼3겹으로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의 길이는 1.300m이고 높이는 10∼15m이다. 여기에 망을 보기 위해 높이 지은 망루 12개를 만들었으며, 남쪽을 제외한 3면에 흙으로 제방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였다. 남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배가 성 아래까지 들어와 정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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