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문화재 검색

  • 인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호

화산서원비 (華山書院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산33-2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전주시

이 비석은 예전에 이곳에 자리잡았던 화산서원에 있던 것이다. 화산서원은 조선 선조 11년(1578)에 건립하여, 조선 전기의 대학자 이언적(李彦迪)과 송인수(宋麟壽)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곳이다. 이언적은 전주 부윤으로 부임하여 도덕과 예절로 백성의 교화에 힘썼고, 송인수는 전라 감사로서 청렴한 정치를 펼쳐, 각각 이 지역과 인연이 깊었다. 화산서원은 효종 9년(1658)에 나라에서 이름을 지어주고 후원하는 사액서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다. 지금은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이 비석만 남아, 이곳이 예전에 선비들이 글을 읽던 학문의 전당임을 전해주고 있다.

이 비석은 예전에 이곳에 자리잡았던 화산서원에 있던 것이다. 화산서원은 조선 선조 11년(1578)에 건립하여, 조선 전기의 대학자 이언적(李彦迪)과 송인수(宋麟壽)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곳이다. 이언적은 전주 부윤으로 부임하여 도덕과 예절로 백성의 교화에 힘썼고, 송인수는 전라 감사로서 청렴한 정치를 펼쳐, 각각 이 지역과 인연이 깊었다. 화산서원은 효종 9년(1658)에 나라에서 이름을 지어주고 후원하는 사액서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다. 지금은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이 비석만 남아, 이곳이 예전에 선비들이 글을 읽던 학문의 전당임을 전해주고 있다.

내레이션

  • 한국어

목록
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전주시 전통문화유산과 063-281-5139 (무형문화재 문의 063-281-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