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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도산서원 (道山書院)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9.03.18
소 재 지 대전 서구 탄방동 233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체육과 042-288-2716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41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도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대군사부·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9년(1693)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숙종 37년(1711)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묘문 3칸·강당 4칸·서재 3칸·남재 4칸·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도산’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도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41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도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대군사부·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9년(1693)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숙종 37년(1711)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묘문 3칸·강당 4칸·서재 3칸·남재 4칸·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도산’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도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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