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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35호

전농동 부군당 무신도 (典農洞府君堂巫神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수량/면적 11점
지정(등록)일 2017.04.13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전***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문화체육과 02-2127-4158

전농동 부군당의 무신도는 기년명은 없지만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서울지역 무신도 가운데 매우 독특한 작품군에 속한다. 6.25를 기점으로 여러 점의 무신도가 사라졌으며, 남아있는 11점의 무신도에는 아래 ‘ㆍ’ 자모를 병기(倂記)해 흘려 쓴 다음과 같은 방제(傍題)가 있다.

‘거사도걸입안위, 만방쳥일산도국긔, 삼불제셕안위, 강남국호구별상마마, 정열부인숑씨마누, 죠션국공신죠씨대감, 사마장군왕신안위, 젼취주도국긔, 마두하쳥도국긔 1, 마두하쳥도 국긔 2, 외응만사도쳥걸입’

이 가운데 ‘존격의 존명’이 기록된 5점의 무신도는 무신도의 일반적인 존명 표기의 예에 속하지만, 나머지 6점은 ‘특정 장면의 도해(圖解)에 대한 기술(記述)’이어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6점의 이 무신도 도상은 지금은 살펴볼 수 없는 서울지역 농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농동 부군당의 주신은 ‘부군할아버지’인 조선 초의 공신 조반(趙胖)이다. 고려 말 토지 개혁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던 조반이 전농동 부군당의 주신으로 모셔진 것도 농사와 무관하지 않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조선시대에 전농동 일대가 왕실의 동적전(東籍田)에 속하고, 1909년에 순종황제가 마지막으로 거둥해 소를 끌고 친경(親耕)의식을 행한 것을 보면, 비록 무신도 범주 내에서의 도해이지만, 농악의 한 단면이 엿보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전농동 부군당의 무신도를 살펴보면, 전배 (前陪) 즉, 앞부분인 전배치에 해당하는 대취타 행렬을 표현한 ‘젼취주도국긔[대열 앞쪽[前陪]의 취타주(吹打奏) 행렬 장면을 담은 도국(都局 ; 神廳)의 깃발 또는 標幟]’는 흥겨운 현장감이 살아 있다. 왕의 거둥을 상징하는 일산(日傘)금월부(金鉞斧)가 등장하는 ‘만방쳥일산도국긔[萬方 靑日傘 都局 깃발 또는 標幟]’는 자세히 도상을 보면, 왕실 위의인 홍일산(紅日傘)이 아니라 그보다 격이 낮은 청일산(靑日傘)이고, 왕실 위의인 금월부가 나타나서 위의 간의 혼재 양상이 드러나 있다. 기물을 든 이들도 벙거지에 미투리를 신고 있어서 역시 민간성격이 짙은 농악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마두하쳥도국긔[馬頭들이 윗사람을 모시는 下廳의 지위로 행렬에 참가하는 장면이 담긴 神廳의 깃발 또는 標幟]’는 말을 관리하는 ‘마두(馬頭)’들이 말과 함께 행렬에 참여한 것이다.

농악의 후배(後陪) 즉, 뒷부분인 후배치에 해당하는 잡색(雜色)의 연희는 거사와 사당이 등장 하는 ‘거사도걸입안위[居士徒 乞粒 安位]’, 그리고 매사냥꾼인 양반 수알치와 꿩을 모는 털이꾼이 등장하는 ‘외응만(방)사도쳥걸입[外鷹坊師 都廳 乞粒]’이다. 방제와 도상으로 보면, 잡색을 맡은 이들이 사설을 주고받는 걸립농악에 해당한다.

전농동 부군당의 무신도는 기년명은 없지만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서울지역 무신도 가운데 매우 독특한 작품군에 속한다. 6.25를 기점으로 여러 점의 무신도가 사라졌으며, 남아있는 11점의 무신도에는 아래 ‘ㆍ’ 자모를 병기(倂記)해 흘려 쓴 다음과 같은 방제(傍題)가 있다.

‘거사도걸입안위, 만방쳥일산도국긔, 삼불제셕안위, 강남국호구별상마마, 정열부인숑씨마누, 죠션국공신죠씨대감, 사마장군왕신안위, 젼취주도국긔, 마두하쳥도국긔 1, 마두하쳥도 국긔 2, 외응만사도쳥걸입’

이 가운데 ‘존격의 존명’이 기록된 5점의 무신도는 무신도의 일반적인 존명 표기의 예에 속하지만, 나머지 6점은 ‘특정 장면의 도해(圖解)에 대한 기술(記述)’이어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6점의 이 무신도 도상은 지금은 살펴볼 수 없는 서울지역 농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농동 부군당의 주신은 ‘부군할아버지’인 조선 초의 공신 조반(趙胖)이다. 고려 말 토지 개혁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던 조반이 전농동 부군당의 주신으로 모셔진 것도 농사와 무관하지 않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조선시대에 전농동 일대가 왕실의 동적전(東籍田)에 속하고, 1909년에 순종황제가 마지막으로 거둥해 소를 끌고 친경(親耕)의식을 행한 것을 보면, 비록 무신도 범주 내에서의 도해이지만, 농악의 한 단면이 엿보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전농동 부군당의 무신도를 살펴보면, 전배 (前陪) 즉, 앞부분인 전배치에 해당하는 대취타 행렬을 표현한 ‘젼취주도국긔[대열 앞쪽[前陪]의 취타주(吹打奏) 행렬 장면을 담은 도국(都局 ; 神廳)의 깃발 또는 標幟]’는 흥겨운 현장감이 살아 있다. 왕의 거둥을 상징하는 일산(日傘)금월부(金鉞斧)가 등장하는 ‘만방쳥일산도국긔[萬方 靑日傘 都局 깃발 또는 標幟]’는 자세히 도상을 보면, 왕실 위의인 홍일산(紅日傘)이 아니라 그보다 격이 낮은 청일산(靑日傘)이고, 왕실 위의인 금월부가 나타나서 위의 간의 혼재 양상이 드러나 있다. 기물을 든 이들도 벙거지에 미투리를 신고 있어서 역시 민간성격이 짙은 농악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마두하쳥도국긔[馬頭들이 윗사람을 모시는 下廳의 지위로 행렬에 참가하는 장면이 담긴 神廳의 깃발 또는 標幟]’는 말을 관리하는 ‘마두(馬頭)’들이 말과 함께 행렬에 참여한 것이다.

농악의 후배(後陪) 즉, 뒷부분인 후배치에 해당하는 잡색(雜色)의 연희는 거사와 사당이 등장 하는 ‘거사도걸입안위[居士徒 乞粒 安位]’, 그리고 매사냥꾼인 양반 수알치와 꿩을 모는 털이꾼이 등장하는 ‘외응만(방)사도쳥걸입[外鷹坊師 都廳 乞粒]’이다. 방제와 도상으로 보면, 잡색을 맡은 이들이 사설을 주고받는 걸립농악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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