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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7호

교룡산성승장동인 (蛟龍山城僧將銅印)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생활용구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1986.09.08
소 재 지 전라북도 남원시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선***

승려 처영에게 하사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처영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하사하였다.

도장은 산성내의 선국사 주지에게 대대로 전해내려 오다, 동학혁명군 김개남이 교룡산성을 본거지로 활동할 때 잃어버렸던 것을 1960년 당시의 주지였던 보월 스님이 발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로 6.3㎝, 세로 7.8㎝, 두께 1.5㎝의 크기로, ‘교룡산성승장인(蛟龍山城僧將印)’이라는 7글자를 세로로 2줄 새겨 놓았다. 직사각형의 원판에는 높이 6.5㎝의 손잡이가 달려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경에 만든 것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동인을 보관해오던 본래의 함은 사라지고 없다.

승려 처영에게 하사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처영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하사하였다.

도장은 산성내의 선국사 주지에게 대대로 전해내려 오다, 동학혁명군 김개남이 교룡산성을 본거지로 활동할 때 잃어버렸던 것을 1960년 당시의 주지였던 보월 스님이 발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로 6.3㎝, 세로 7.8㎝, 두께 1.5㎝의 크기로, ‘교룡산성승장인(蛟龍山城僧將印)’이라는 7글자를 세로로 2줄 새겨 놓았다. 직사각형의 원판에는 높이 6.5㎝의 손잡이가 달려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경에 만든 것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동인을 보관해오던 본래의 함은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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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남원시 문화관광과 063-620-6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