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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2호

김좌근고택 (김 左根古宅)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2동
지정(등록)일 2003.04.21
소 재 지 경기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222-14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기도 이천시 문화관광과 031-645-3655

김좌근 고택은 백사면 내촌리 소일마을 상단에 있으며, 야트막한 산자락을 뒤에 두고 남향으로 자리 잡은 전통 한옥으로, 당초에는 99칸이었으나, 지금은 담장과 행랑채가 없어지고 안채와 별채만 남아 있다.



이 집은 영의정 김좌근의 아들이며 고종 때 어영대장과 이조판서를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겸한 별장용으로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복판에 높다란 솟을대문과 사랑채, 행랑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싼 규모 있는 사대부집 전통가옥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으나, 후손들이 덩치가 큰 건물을 관리하기가 벅차다는 이유로 당시 신흥재벌에 건물을 팔아 넘겼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뜯어 옮기던 도중 회사가 부도로 건물 이전이 중단되어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구조는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채로 통하도록 되어 있는데 안채는 ㄷ자형으로 중문과 연결된 사랑채가 있었으며, 바깥쪽은 대문과 연결된 행랑채가 ㄱ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안채와 별채가 서로 떨어져 독립된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두 건물 사이에서도 가로막힌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 뒤쪽에 널마루로 짠 회랑을 달아서 왕래하기 편하도록 서로 연결된 구조였다.



회랑은 없어졌지만 별채 뒷면을 돌아가며 둘러싼 쪽마루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마당에 흙을 밟지 않고서도 안채와 별채 사이를 편하게 왕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채는 서쪽부터 부엌과 다락, 3개의 방과 곳간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일자집이다. 부엌은 3칸 규모로 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퇴를 달았고 오른쪽에 다락이 있다. 3개의 방 전면에는 3칸 정도의 대청마루가 있다.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는 물론이고 마루와 각종 문틀이며 문살 하나에 이르기까지 잘 다듬어져서 소홀한 구석이 없고 기둥을 받친 주춧돌과 섬돌, 건물을 둘러싼 기단석들도 반듯하게 잘 다듬어져 정갈한 인상을 준다. 집 앞으로는 연못을 파서 인공섬으로 만들었는데, 주민들이 시멘트 구조물로 된 정자를 지어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다.



별채를 둘러싼 담장을 야트막하게 하여 다락에 오르면 담장 너머로 연못과 툭 터진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여유와 풍류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솟을 대문과 담장, 행랑채 등이 없어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남아 있는 건물들은 조선후기 권문세가의 가옥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김좌근(金左根, 1797년~1869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안동김씨 세도기 후반의 중심인물로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아들이자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의 남동생이었다. 영의정에 세 번이나 보직되는 등 순탄한 벼슬생활을 하면서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 이었다.

김좌근 고택은 백사면 내촌리 소일마을 상단에 있으며, 야트막한 산자락을 뒤에 두고 남향으로 자리 잡은 전통 한옥으로, 당초에는 99칸이었으나, 지금은 담장과 행랑채가 없어지고 안채와 별채만 남아 있다.



이 집은 영의정 김좌근의 아들이며 고종 때 어영대장과 이조판서를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겸한 별장용으로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복판에 높다란 솟을대문과 사랑채, 행랑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싼 규모 있는 사대부집 전통가옥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으나, 후손들이 덩치가 큰 건물을 관리하기가 벅차다는 이유로 당시 신흥재벌에 건물을 팔아 넘겼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뜯어 옮기던 도중 회사가 부도로 건물 이전이 중단되어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구조는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채로 통하도록 되어 있는데 안채는 ㄷ자형으로 중문과 연결된 사랑채가 있었으며, 바깥쪽은 대문과 연결된 행랑채가 ㄱ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안채와 별채가 서로 떨어져 독립된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두 건물 사이에서도 가로막힌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 뒤쪽에 널마루로 짠 회랑을 달아서 왕래하기 편하도록 서로 연결된 구조였다.



회랑은 없어졌지만 별채 뒷면을 돌아가며 둘러싼 쪽마루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마당에 흙을 밟지 않고서도 안채와 별채 사이를 편하게 왕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채는 서쪽부터 부엌과 다락, 3개의 방과 곳간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일자집이다. 부엌은 3칸 규모로 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퇴를 달았고 오른쪽에 다락이 있다. 3개의 방 전면에는 3칸 정도의 대청마루가 있다.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는 물론이고 마루와 각종 문틀이며 문살 하나에 이르기까지 잘 다듬어져서 소홀한 구석이 없고 기둥을 받친 주춧돌과 섬돌, 건물을 둘러싼 기단석들도 반듯하게 잘 다듬어져 정갈한 인상을 준다. 집 앞으로는 연못을 파서 인공섬으로 만들었는데, 주민들이 시멘트 구조물로 된 정자를 지어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다.



별채를 둘러싼 담장을 야트막하게 하여 다락에 오르면 담장 너머로 연못과 툭 터진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여유와 풍류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솟을 대문과 담장, 행랑채 등이 없어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남아 있는 건물들은 조선후기 권문세가의 가옥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김좌근(金左根, 1797년~1869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안동김씨 세도기 후반의 중심인물로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아들이자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의 남동생이었다. 영의정에 세 번이나 보직되는 등 순탄한 벼슬생활을 하면서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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