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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6호

관성묘 (關聖廟)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건물 1棟, 토지 31.6㎡
지정(등록)일 1974.01.15
소 재 지 서울 중구 동호로30길 2 (장충동2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박금동

관성묘는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의 일종으로, 관왕묘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왜구를 물리친 것이 관우 장군신의 도움이라 여기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우리나라 관성묘의 효시인 ‘남묘’가 서울에 처음 건립되었고, 이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왕의 명을 받들어 전국적으로 건립하여 수호신당으로 섬기에 되었다고 한다.

당은 16평 넓이의 기와 건물로,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에 18세기 화풍으로 그려 놓은 관우장군과 그 부인의 그림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그 왼쪽에 또 다른 무신도가 걸려있다. 한때는 굿당으로 섬겨 무당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요즘은 거의 굿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택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 군사주둔지인 군영을 통치하던 남영(南營)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영에서 관할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조말 고종의 후궁이었던 엄비(嚴妃)가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며, 호국신앙과 더불어 불교·유교 등 다양한 성격이 혼합된 관제신앙이 민간신앙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관성묘는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의 일종으로, 관왕묘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왜구를 물리친 것이 관우 장군신의 도움이라 여기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우리나라 관성묘의 효시인 ‘남묘’가 서울에 처음 건립되었고, 이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왕의 명을 받들어 전국적으로 건립하여 수호신당으로 섬기에 되었다고 한다.

당은 16평 넓이의 기와 건물로,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에 18세기 화풍으로 그려 놓은 관우장군과 그 부인의 그림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그 왼쪽에 또 다른 무신도가 걸려있다. 한때는 굿당으로 섬겨 무당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요즘은 거의 굿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택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 군사주둔지인 군영을 통치하던 남영(南營)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영에서 관할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조말 고종의 후궁이었던 엄비(嚴妃)가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며, 호국신앙과 더불어 불교·유교 등 다양한 성격이 혼합된 관제신앙이 민간신앙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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