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

남평문씨본리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마을
수량/면적 11호11,701㎡
지정(등록)일 1995.05.12
소 재 지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 (본리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남평문씨문중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대구광역시 달성군 관광과 문화재팀 053-668-3161~2

이곳은 고려말의 충신이며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문익점의 18세손인 문경호가 1840년을 전후하여 터를 잡아 남평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인흥사의 절터였던 곳을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현재 아홉 가구의 살림집과 수봉정사, 광거당, 인수문고 등이 한울속에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풍치 있는 토담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총 70여 채의 전통와가가 들어서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거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

이곳은 고려말의 충신이며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문익점의 18세손인 문경호가 1840년을 전후하여 터를 잡아 남평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인흥사의 절터였던 곳을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현재 아홉 가구의 살림집과 수봉정사, 광거당, 인수문고 등이 한울속에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풍치 있는 토담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총 70여 채의 전통와가가 들어서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거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

내레이션

  •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