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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217호

파주육계토성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2007.10.22
소 재 지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413외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기도 파주시 문화예술과 031-940-5831

임진강유역의 남안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의 평지토성으로 이곳은 임진강이 사행곡류하여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만곡부로 도하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육계토성의 둘레는 약 1,700m로 평면은 동북·서남 방향에 장축을 둔 장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내성의 중앙부 토루는 1996년 홍수 때 사라졌으며 서편 토루는 군부대의 방벽으로 이용되고 있다. 외성은 판축기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동남쪽 내벽구간에서 는 하부에 현무암석재와 강돌을 이용하여 높이 1m 내외로 보강한 석축이 관찰 된다. 토루는 서남쪽 구간에 비교적 잘 남아있는데 높이 3~5m, 너비 4~6 m 정도이다. 내성에는 너비 10~20m의 평탄한 단을 두고 있으며 그 안쪽으 로 3~5m 아래에 성 내부 평탄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문지는 동문지·남문 지·서문지를 각 방향에 따라 조성하였으며 동남벽과 서남벽의 회절부 안쪽에 우물지 2개소가 남아 있다. 특히 서문지 부근에는 동서로 길게 뻗은 저습지가 남벽부를 따라 성안의 중 간부까지 형성되어 있으며 성밖으로 는 서쪽 강변까지 이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육계토성에 대한 문헌기록을 살펴보면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여도비지(與圖備誌)』에 ‘치소 서쪽 7 리에 있으며 토축으로 둘레는 7,692 척(약2,300m)이며 장단의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상대한다’고 하였으며, 『적성현읍지(積城縣邑誌)』에는 ‘육계토성 북변 강가에 소돈대가 있었는데, 속전에는 옛 궁궐의 종을 매단 곳이다’라고 하였 다. 또한 허목의 『기언별집(記言別集)』 권 15 「기행 무술(1658) 주행기」에는 “날이 저물어 돛을 올리고 호로 탄으로 올라가니 여기는 호로하이고, 그 위에는 육계이 다. 또 옛날 진루가 있었는데 앞의 여울은 아주 험하여 사미천이 여기에 들어온다. 상류에 옛 성이 있고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여 있는데 석벽으로 인하여 요새를 삼았다. 강가의 부로(父老)들 사이에 전하여 오기를, 옛날 만호(萬戶)의 진루였다고 하나 이것을 알 수 없고, 고려 때에 여러 번 거란의 병화를 입었으니 이곳은 전쟁터로 오늘날까지 옛 자취가 이와 같은가”라는 이 지역 을 답사하고 기록한 기행문이 남아 있다

임진강유역의 남안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의 평지토성으로 이곳은 임진강이 사행곡류하여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만곡부로 도하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육계토성의 둘레는 약 1,700m로 평면은 동북·서남 방향에 장축을 둔 장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내성의 중앙부 토루는 1996년 홍수 때 사라졌으며 서편 토루는 군부대의 방벽으로 이용되고 있다. 외성은 판축기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동남쪽 내벽구간에서 는 하부에 현무암석재와 강돌을 이용하여 높이 1m 내외로 보강한 석축이 관찰 된다. 토루는 서남쪽 구간에 비교적 잘 남아있는데 높이 3~5m, 너비 4~6 m 정도이다. 내성에는 너비 10~20m의 평탄한 단을 두고 있으며 그 안쪽으 로 3~5m 아래에 성 내부 평탄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문지는 동문지·남문 지·서문지를 각 방향에 따라 조성하였으며 동남벽과 서남벽의 회절부 안쪽에 우물지 2개소가 남아 있다. 특히 서문지 부근에는 동서로 길게 뻗은 저습지가 남벽부를 따라 성안의 중 간부까지 형성되어 있으며 성밖으로 는 서쪽 강변까지 이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육계토성에 대한 문헌기록을 살펴보면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여도비지(與圖備誌)』에 ‘치소 서쪽 7 리에 있으며 토축으로 둘레는 7,692 척(약2,300m)이며 장단의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상대한다’고 하였으며, 『적성현읍지(積城縣邑誌)』에는 ‘육계토성 북변 강가에 소돈대가 있었는데, 속전에는 옛 궁궐의 종을 매단 곳이다’라고 하였 다. 또한 허목의 『기언별집(記言別集)』 권 15 「기행 무술(1658) 주행기」에는 “날이 저물어 돛을 올리고 호로 탄으로 올라가니 여기는 호로하이고, 그 위에는 육계이 다. 또 옛날 진루가 있었는데 앞의 여울은 아주 험하여 사미천이 여기에 들어온다. 상류에 옛 성이 있고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여 있는데 석벽으로 인하여 요새를 삼았다. 강가의 부로(父老)들 사이에 전하여 오기를, 옛날 만호(萬戶)의 진루였다고 하나 이것을 알 수 없고, 고려 때에 여러 번 거란의 병화를 입었으니 이곳은 전쟁터로 오늘날까지 옛 자취가 이와 같은가”라는 이 지역 을 답사하고 기록한 기행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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