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경기도 기념물 제204호

평택비파산성지 (平澤琵杷山城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수량/면적 1
지정(등록)일 2005.10.17
소 재 지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용성리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기도 평택시 문화예술과 031-8024-3249

평택시 안중읍 용성리의 해발 102.2m인 비파산에 있다. 비파산은 산세가 비파악기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동쪽으로 차령산맥, 남쪽으로 아산만 일대, 서쪽과 북쪽으로는 서해안 일대가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산성은 비파산의 정상부와 용성리 뒷골의 평지를 포함하는 삼태기 모양의 평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1,622m로 인근의 성곽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발굴조사 결과 성벽은 판축공법으로 쌓은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기초를 정지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기단석열을 배치한 후 점질토와 사질토를 교대로 쌓는 판축공법으로 중심토루를 먼저 구축했다. 이후 중심토루 내외의 기저부에 와적층을 깔고 내피토루와 외피토루를 덧붙여 쌓아 토성을 구축했다. 성벽이 돌아가는 부분에는 외부로 돌출된 치를 설치했으며, 4개 정도의 성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축성법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등장하며, 성벽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비파산성은 고려시대 초기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벽을 쌓은 흙 속에서 ‘건덕3년(乾德三年)’명 기와가 출토되어 965년 고려 광종 16년 이후에 축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일 신라 시대에 거성현으로 불리었던 평택지역은 고려시대에 용성현(龍城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치소성의 위치도 산성에서 평지성으로 옮겨진다. 따라서 자미산성에 있던 거성현의 치소를 비파산성으로 옮겨 용성현의 치소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내에서 ‘거성(車城)’명 기와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용성현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한동안 거성현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비파산성은 통일신라에서 고려 시대의 치소성이 석성에서 토성으로, 산성에서 평산성으로 변화되었음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