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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169호

문정공조광조묘및신도비 (文正公趙光祖墓및神道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9.10.18
소 재 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산 55-1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기도 용인시 문화관광과 031-324-2147, 2148

조선 중기의 문신 정암(靜庵) 조광조(1482∼1519) 선생의 묘소이다.

그는 어려서 김굉필에게 학문을 배운 이래로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한사람이 되었다. 중종 5년(1515) 사마시에 합격한 후,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관직에 나섰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유교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고, 향촌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여씨향약’을 8도에 실시하였다. 신진사류들과 함께 잘못된 제도의 개혁 및 그에 따를 새로운 질서의 수립에 노력하였지만 기성세력이었던 훈구파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결국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암(靜庵) 조광조(1482∼1519) 선생의 묘소이다.

그는 어려서 김굉필에게 학문을 배운 이래로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한사람이 되었다. 중종 5년(1515) 사마시에 합격한 후,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관직에 나섰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유교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고, 향촌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여씨향약’을 8도에 실시하였다. 신진사류들과 함께 잘못된 제도의 개혁 및 그에 따를 새로운 질서의 수립에 노력하였지만 기성세력이었던 훈구파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결국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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