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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기념물 제118호

해학이기선생생가 (海鶴李沂先生生家)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탄생지
수량/면적 일원(863㎡)
지정(등록)일 2003.12.26
소 재 지 전북 김제시 성덕면 대석3길 41 (대석리)
시 대 근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정환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김제시 문화홍보축제실 063-540-3884, 3324

해학 이기선생은 황현, 이정직과 더불어 호남 3걸로 불리는 조선말 실학자이자 항일독립투사로서 동학농민혁명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전문대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4년 통감부 설치에 따른 국제적 외교활동으로 구국운동을 전개하고자 1905년 미국 포츠머스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나아가 일본의 침략저의를 규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6년에는 장지연, 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교육자로써 민중계몽에 힘썼으며 민족의 주체의식을 고취하려는 뜻으로 1909년 단학회 창립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그 해 순직하였다. 『해학유서』라는 저서를 남겼으며 1968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본디 이기선생의 생가는 안채 1동과 사랑채 1동의 초가집이었으나 이후 현 거주자가 안채는 스레트로 개조하였고 사랑채는 전파되어 그 터에 창고를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해학 이기선생은 황현, 이정직과 더불어 호남 3걸로 불리는 조선말 실학자이자 항일독립투사로서 동학농민혁명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전문대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4년 통감부 설치에 따른 국제적 외교활동으로 구국운동을 전개하고자 1905년 미국 포츠머스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나아가 일본의 침략저의를 규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6년에는 장지연, 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교육자로써 민중계몽에 힘썼으며 민족의 주체의식을 고취하려는 뜻으로 1909년 단학회 창립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그 해 순직하였다. 『해학유서』라는 저서를 남겼으며 1968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본디 이기선생의 생가는 안채 1동과 사랑채 1동의 초가집이었으나 이후 현 거주자가 안채는 스레트로 개조하였고 사랑채는 전파되어 그 터에 창고를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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