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경기도 기념물 제108호

갑곶나루선착장석축로 (甲串나루船着場石築路)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2개로
지정(등록)일 1988.03.21
소 재 지 경기 경기전역강화 강화읍 갑곳리,김포군 월곳면 성동리 월곶면 성동리 271-22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강화군,김포군

강화읍 갑곶리와 김포군 월곶면을 배로 연결해 주던 곳이다. 갑곶이란 지명은 고려 고종 때 몽고가 침입하자 왕이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을 때 이 곳이 강건너와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 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정묘호란(1627) 당시 인조가 건넜던 사실이 있고, 병자호란(1636) 때에는 봉림대군이 임금을 모셨던 곳이기도 하며, 병인양요(1866) 때에는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루터 시설없이 갯벌만 있었으나 1419년(세종1) 박신(朴信)이라는 사람이 사재(私財)를 털어 1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1900년대초까지 약 500여년간 강화도와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통행시설로 이용되었다. 1920년경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가 신설되면서 옛 나루터는 폐쇄되었으며, 1970년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완전히 폐쇄되었다.

강화읍 갑곶리와 김포군 월곶면을 배로 연결해 주던 곳이다. 갑곶이란 지명은 고려 고종 때 몽고가 침입하자 왕이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을 때 이 곳이 강건너와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 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정묘호란(1627) 당시 인조가 건넜던 사실이 있고, 병자호란(1636) 때에는 봉림대군이 임금을 모셨던 곳이기도 하며, 병인양요(1866) 때에는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루터 시설없이 갯벌만 있었으나 1419년(세종1) 박신(朴信)이라는 사람이 사재(私財)를 털어 1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1900년대초까지 약 500여년간 강화도와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통행시설로 이용되었다. 1920년경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가 신설되면서 옛 나루터는 폐쇄되었으며, 1970년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완전히 폐쇄되었다.

내레이션

  • 한국어

목록
상 세 문 의 : 경기도 김포시 문화공보담당관실 031-980-2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