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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기념물 제83호

화천용암리선사유적 (華川龍岩里先史遺蹟)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수량/면적 일원(76,690㎡)
지정(등록)일 2004.01.17
소 재 지 강원 화천군 하남면 용암리 1121번지 외 34필지
시 대 청동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화천군

이 유적은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집자리 176기, 수혈유구 32기, 굴립주 건물 14동, 토광묘 11기 등 유구의 수가 230여기가 넘어 국내 최고의 밀집도를 보여 주는 청동기시대의 집단 취락유적이다.

발굴유구 중 주거지는 상부 구조, 벽체, 출입구 시설 등이 확인되어 청동기시대의 가옥구조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으며, 주거지들의 중복관계를 볼 때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와 용암리의 하안 충적대지 상에 여러 기간 동안 형성된 취락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토유물은 박편의 일부를 갈아 인부를 만든 석기(박편석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석부와 석촉을 비롯,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석기들이 완제품 또는 반제품의 형태로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정 및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유적의 시기는 앞으로 주거지와 출토유물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검토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의 유적으로, 그 중심시기는 기원전 9세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한연대는 기원전 10세기경을 상회하는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이며, 하한연대는 기원전 6세기경까지도 취락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화천 용암리 일대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취락은 최소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6세기 경까지 형성된 집단취락으로서 청동기시대 북한강유역의 생활문화양상과 주거발달사 연구, 청동기문화의 전파경로를 밝혀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며, 동아시아에서도 유례가 드문 마을유적이라는 점에서 지정·보존가치가 크다.

이 유적은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집자리 176기, 수혈유구 32기, 굴립주 건물 14동, 토광묘 11기 등 유구의 수가 230여기가 넘어 국내 최고의 밀집도를 보여 주는 청동기시대의 집단 취락유적이다.

발굴유구 중 주거지는 상부 구조, 벽체, 출입구 시설 등이 확인되어 청동기시대의 가옥구조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으며, 주거지들의 중복관계를 볼 때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와 용암리의 하안 충적대지 상에 여러 기간 동안 형성된 취락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토유물은 박편의 일부를 갈아 인부를 만든 석기(박편석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석부와 석촉을 비롯,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석기들이 완제품 또는 반제품의 형태로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정 및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유적의 시기는 앞으로 주거지와 출토유물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검토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의 유적으로, 그 중심시기는 기원전 9세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한연대는 기원전 10세기경을 상회하는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이며, 하한연대는 기원전 6세기경까지도 취락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화천 용암리 일대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취락은 최소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6세기 경까지 형성된 집단취락으로서 청동기시대 북한강유역의 생활문화양상과 주거발달사 연구, 청동기문화의 전파경로를 밝혀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며, 동아시아에서도 유례가 드문 마을유적이라는 점에서 지정·보존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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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강원 화천군 문화관광과 033-440-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