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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5호

해운대석각 (海雲臺石刻)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조각 / 암벽조각 / 각석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9.03.09
소 재 지 부산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내)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동백섬 내에 자리한 작은 바위 윗면에 ‘해운대(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긴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학자였던 최치원 선생의 글씨로 전한다.

선생이 가야산으로 향하던 도중 이 주변의 자연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돌을 쌓아 대를 만든 후,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이 바위에 ‘해운대(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기었는데, 이때 부터 ‘해운대’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의 글씨라는 사실이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으나, 고려시대 당시 문신이었던 정포의 시에서 ‘대는 황폐하여 흔적이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고 읊고 있어, 이미 그 당시에도 이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씻겨 나가 ‘운(雲)’자가 심하게 닳아있는 상태이다.

동백섬 내에 자리한 작은 바위 윗면에 ‘해운대(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긴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학자였던 최치원 선생의 글씨로 전한다.

선생이 가야산으로 향하던 도중 이 주변의 자연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돌을 쌓아 대를 만든 후,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이 바위에 ‘해운대(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기었는데, 이때 부터 ‘해운대’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의 글씨라는 사실이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으나, 고려시대 당시 문신이었던 정포의 시에서 ‘대는 황폐하여 흔적이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고 읊고 있어, 이미 그 당시에도 이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씻겨 나가 ‘운(雲)’자가 심하게 닳아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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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문화관광과 051-749-4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