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0호

인왕산 백운동 계곡 (仁王山 白雲洞 溪谷)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자연유산 / 명승 / 자연명승
수량/면적 각자바위 1基, 백운동 계곡부 및 토지 8,675.5㎡
지정(등록)일 2014.10.30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백운동(白雲洞)은 인왕산 자락 자하문터널 상부 일대로서 행정구역상 종로구 청운동 6-6번지를 중심으로 한 곳이다. 청운동에서 부암동 방향으로 가는 자하문터널 입구 오른쪽 편에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건물의 뒷편 즉, 서북쪽 일대의 계곡부를 일컫는다.

인왕산은 대부분 암벽이고 험준하지만 그 동록은 산수 자연이 아름다운 경승지로 유명하다. 사직공원에서 북쪽으로 등성이를 넘어가면 필운동의 필운대가 있고 필운대 언덕에서 다시 북쪽으로 내려가면 산록의 골짜기가 깊숙한데 여기에 인왕동 · 옥류동 · 수성동 등의 산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앞으로 송석원(松石園) · 청풍계(淸風溪) 등 명소가 이어지며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 –문화사적편>

, 그 동북쪽 끝에 백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백운동은 흰 구름이 떠있는 계곡이라는 의미로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 ‘계곡’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일찍이 조선 전기부터 당대의 사대가(四大家)로 칭송받던 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 1410~1481),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 1422~1484),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과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 등이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한 바 있으며, 용재(傭齋) 성현(成俔, 1439~1504)의 저서 『용재총화(傭齋叢話)』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에서도 한양도성 내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다섯 군데의 명소(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 청학동)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는 장소이다.

『한양도성도(1770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도성도」 『동여도(1856~1872, 보물1358호)』 등의 고지도에서도 그 지명이 확인되고 있으며,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하나인 「백운동」의 회화를 통해서도 그 명승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준천사실(濬川事實)』, 『한경지략(漢京識略)』, 『육전조례(六典條例)』 등에 따르면 한양의 도성 내 공간을 구획하는 중심축이자, 하수도였던 개천(開川, 오늘날의 청계천)이 발원하는 물길 중 가장 길다고 하는 백운동천(白雲洞川)이 흘러나오는 계곡에 해당한다.

그 역사·문화적 경관이 근현대 시기까지 유지되었기에 조선 전기 문신인 이염의(?~1492)의 집터가 있었고 대한제국기에는 법부대신를 지낸 동농 김가진(1846~1922)도 별서(別墅)인 백운장(白雲莊)을 이곳에 조성해 1910년 국권 상실 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 지금도 김가진의 별서 터의 일부와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고 쓴 그의 바위글씨가 남아 있다.

이 백운장은 김가진 일가의 중국망명 이후 일제강점기동안 고급요리집으로 사용되었던 기록과 사진이 확인되고 있으며, 해방 이후부터 1961년 박정희 정권 때 불하 결정(이때 현 소유주가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기 전까지 요정 및 호텔 등으로 요정정치가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왕산 백운동 계곡은 서울의 몇 안 되는 ‘전통적 경승지’이자 청계천의 주요 수원이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있고 시대를 달리하여 오랜 기간 역사적 인물들의 활동공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계곡부 일대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옛 백운동의 수려한 경관을 제도적으로 보존하고자 한다.

백운동(白雲洞)은 인왕산 자락 자하문터널 상부 일대로서 행정구역상 종로구 청운동 6-6번지를 중심으로 한 곳이다. 청운동에서 부암동 방향으로 가는 자하문터널 입구 오른쪽 편에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건물의 뒷편 즉, 서북쪽 일대의 계곡부를 일컫는다.

인왕산은 대부분 암벽이고 험준하지만 그 동록은 산수 자연이 아름다운 경승지로 유명하다. 사직공원에서 북쪽으로 등성이를 넘어가면 필운동의 필운대가 있고 필운대 언덕에서 다시 북쪽으로 내려가면 산록의 골짜기가 깊숙한데 여기에 인왕동 · 옥류동 · 수성동 등의 산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앞으로 송석원(松石園) · 청풍계(淸風溪) 등 명소가 이어지며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 –문화사적편>

, 그 동북쪽 끝에 백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백운동은 흰 구름이 떠있는 계곡이라는 의미로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 ‘계곡’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일찍이 조선 전기부터 당대의 사대가(四大家)로 칭송받던 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 1410~1481),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 1422~1484),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과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 등이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한 바 있으며, 용재(傭齋) 성현(成俔, 1439~1504)의 저서 『용재총화(傭齋叢話)』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에서도 한양도성 내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다섯 군데의 명소(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 청학동)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는 장소이다.

『한양도성도(1770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도성도」 『동여도(1856~1872, 보물1358호)』 등의 고지도에서도 그 지명이 확인되고 있으며,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하나인 「백운동」의 회화를 통해서도 그 명승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준천사실(濬川事實)』, 『한경지략(漢京識略)』, 『육전조례(六典條例)』 등에 따르면 한양의 도성 내 공간을 구획하는 중심축이자, 하수도였던 개천(開川, 오늘날의 청계천)이 발원하는 물길 중 가장 길다고 하는 백운동천(白雲洞川)이 흘러나오는 계곡에 해당한다.

그 역사·문화적 경관이 근현대 시기까지 유지되었기에 조선 전기 문신인 이염의(?~1492)의 집터가 있었고 대한제국기에는 법부대신를 지낸 동농 김가진(1846~1922)도 별서(別墅)인 백운장(白雲莊)을 이곳에 조성해 1910년 국권 상실 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 지금도 김가진의 별서 터의 일부와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고 쓴 그의 바위글씨가 남아 있다.

이 백운장은 김가진 일가의 중국망명 이후 일제강점기동안 고급요리집으로 사용되었던 기록과 사진이 확인되고 있으며, 해방 이후부터 1961년 박정희 정권 때 불하 결정(이때 현 소유주가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기 전까지 요정 및 호텔 등으로 요정정치가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왕산 백운동 계곡은 서울의 몇 안 되는 ‘전통적 경승지’이자 청계천의 주요 수원이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있고 시대를 달리하여 오랜 기간 역사적 인물들의 활동공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계곡부 일대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옛 백운동의 수려한 경관을 제도적으로 보존하고자 한다.

내레이션

  • 한국어

목록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문화과 02-2148-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