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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2호

불암산성 (佛巖山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산성(서울지역) 토지 3,692.6㎡
지정(등록)일 2010.12.23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94길 128 (중계동)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노원구 문화체육과 02-2116-3787

불암산성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산101-1번지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산97번지, 산104번지에 접해 있다. 성이 위치한 곳은 불암산 주봉(507m)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상의 제 2봉(420.3m)이며 정상부에서는 중랑구 일대가 잘 조망되지만 북쪽방향은 불암산으로 인하여 시야가 가려져 있다.

성(城)은 평탄한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자연지형을 따라 쌓았는데 평면 형태는 부등변(不等邊)의 5각형이나 원형(圓形)에 가깝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236m, 성 내부 면적은 약 5321.8㎡이다. 성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졌지만 서벽과 동벽 일부 구간에서는 10단(段) 이상이 잔존하여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아차산 보루군과는 축성기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벽석은 세로가 긴 편이고, 면석은 장방형으로 다듬은 후 줄을 맞추어 수직에 가깝게 쌓아올렸으며, 뒷채움 돌은 길쭉한 돌을 길이 방향으로 놓아 면석이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하였다. 문 터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등산로가 형성된 부분으로 생각된다. 정상부 북동쪽 아랫단에는 우물로 추정되는 원형의 석축 구조물이 있다. 성내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헬기장의 북동쪽에는 집수시설(集水施設)로 추정되는 직경 8m 정도의 원형 함몰부가 있다. 유물은 정상부의 평탄한 곳과 경사면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류(無紋土器類)와 삼국시대~통일신라 시기의 경질토기편(硬質土器片)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산성은 서울 지역으로 진출한 신라가 한강 유역 방어를 위해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산성 축성 이전에도 청동기시대부터 주거유적이나 간단한 방어시설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암산성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산101-1번지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산97번지, 산104번지에 접해 있다. 성이 위치한 곳은 불암산 주봉(507m)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상의 제 2봉(420.3m)이며 정상부에서는 중랑구 일대가 잘 조망되지만 북쪽방향은 불암산으로 인하여 시야가 가려져 있다.

성(城)은 평탄한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자연지형을 따라 쌓았는데 평면 형태는 부등변(不等邊)의 5각형이나 원형(圓形)에 가깝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236m, 성 내부 면적은 약 5321.8㎡이다. 성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졌지만 서벽과 동벽 일부 구간에서는 10단(段) 이상이 잔존하여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아차산 보루군과는 축성기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벽석은 세로가 긴 편이고, 면석은 장방형으로 다듬은 후 줄을 맞추어 수직에 가깝게 쌓아올렸으며, 뒷채움 돌은 길쭉한 돌을 길이 방향으로 놓아 면석이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하였다. 문 터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등산로가 형성된 부분으로 생각된다. 정상부 북동쪽 아랫단에는 우물로 추정되는 원형의 석축 구조물이 있다. 성내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헬기장의 북동쪽에는 집수시설(集水施設)로 추정되는 직경 8m 정도의 원형 함몰부가 있다. 유물은 정상부의 평탄한 곳과 경사면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류(無紋土器類)와 삼국시대~통일신라 시기의 경질토기편(硬質土器片)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산성은 서울 지역으로 진출한 신라가 한강 유역 방어를 위해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산성 축성 이전에도 청동기시대부터 주거유적이나 간단한 방어시설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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