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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기념물 제23호

해공신익희가옥 (海公 申翼熙 家屋)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건물 2棟, 토지 91.3㎡
지정(등록)일 2005.02.11
소 재 지
시 대 기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집은 독립운동가로서 해방 후 초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 신익희 선생(1894 ~1956)이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 1954년 8월부터 1956년 5월 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전주로 내려가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1년 9개월 여 거주한 곳이다.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 된이 집은 집장수들이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을 모방하여 1930년대에 지은 도시형 한옥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五樑架) 집이다. 겹처마이면서도 처마를 짧게 내어 채광을 고려하고, 굴도리를 사용하였으며, 건물 규모에 비해 단면이 과대한 대들보를 사용하여 오량가(五樑架)로 가구(架構)한 점 등에서 이 시대 도시형 한옥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집의 외벽과 내벽, 창호 등은 해공 신익희 선생 거주 이후로 입주자의 편의에 따라 일부 변형되었으나 건물의 구조는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건물의 변형된 부분들 그 자체도 도시형 한옥의 변천사를 알 수 있게 하는 건축 사적 자료가 된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45년 해방 이후 중국에서의 오랜 독립항쟁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한미호텔 → 창신동 조씨가 → 종로 6가 낙산장 → 묘동 장씨가 → 삼청동 106번지(오늘날 국무총리 공관)→ 효자동 164-2 등에서 거주했다. 이 중 효자동 164-2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 민주당을 창당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시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장기집권과 독재체제 강화를 시도하던 이승만 전(前)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대항하는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요약되는 그의 정치인생이 정점에 이른 시기에 거주하며 활동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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