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

양씨삼강문 (梁氏三綱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5.02.25
소 재 지 광주 광산구 박호동 131-1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양황진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문화체육과 062-960-8252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양씨삼강문은 충민공 양산숙 일가 7명을 기리기 위해 인조 13년(1635)에 세운 정려문(旌閭門)이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양씨삼강문은 정면 5칸·측면 1칸짜리 맞배지붕의 평범한 건물이다.

원래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을 모셨으나, 회진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문중에서 모시고 있어 현재는 6분의 정려만을 모시고 있다.

충신으로 모셔진 양산숙은 임진왜란(1592)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장군과 함께 순절한 무인이다. 효자로 모셔진 양산룡과 양산수는 양산숙의 형제로, 정유재란(1597)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인물들이다. 절부로 모셔진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박씨는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으며, 그의 부인인 광산이씨 또한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김광운에게 출가한 누이 양씨는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양씨삼강문은 충민공 양산숙 일가 7명을 기리기 위해 인조 13년(1635)에 세운 정려문(旌閭門)이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양씨삼강문은 정면 5칸·측면 1칸짜리 맞배지붕의 평범한 건물이다.

원래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을 모셨으나, 회진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문중에서 모시고 있어 현재는 6분의 정려만을 모시고 있다.

충신으로 모셔진 양산숙은 임진왜란(1592)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장군과 함께 순절한 무인이다. 효자로 모셔진 양산룡과 양산수는 양산숙의 형제로, 정유재란(1597)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인물들이다. 절부로 모셔진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박씨는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으며, 그의 부인인 광산이씨 또한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김광운에게 출가한 누이 양씨는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

내레이션

  •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