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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0호

계양산성 (桂陽山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1곽 (104,470㎡)
지정(등록)일 1992.05.15
소 재 지 인천 계양구 계산동 일원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인천광역시 계양구청
관리자(관리단체) 계양구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계양산 동쪽 능선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고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성을 쌓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보문헌비고』, 『관방성곽조』에 의하면 성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레 1,180m.경인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 394m의 계양산 정상부에서 동남쪽의 능선 아래를 테뫼식산성(산 정산을 둘러 쌓은 성)이다. 계양산은 옛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진산이며,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한다. 이 산에 있는 만일사(萬日寺)에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시가 전하고, 그의 망해지(望海誌)에 있는 기문(記文)에는 이곳에서 인천과 통진이 모두 조망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계양산고성은 석축이고 둘레가 1,937척(尺)이라 하였고, 《문헌비고》와 《대동지지》에서는 안남산의 동남쪽에 있는 고성을 같은 규모로 기록하여 이것이 곧 계양산성임을 알수 있다. 계양산의 동쪽 지봉 능선부에서 부평 고읍쪽으로 석축이 무너진 상태로 군데군데 터가 있으며, 김포군과 경계를 이루는 장명이고개 남동쪽의 중심성(衆心城)과 함께 김포에서 부평으로 통하는 고갯길의 요새를 진정(鎭定)하는 위치에 축조되어 있다. 삼국시대 이래의 성터로 여겨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과 왜의 고니시(小西行長)군과의 치열한 싸움터였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현재는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계양산 동쪽 능선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고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성을 쌓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보문헌비고』, 『관방성곽조』에 의하면 성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레 1,180m.경인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 394m의 계양산 정상부에서 동남쪽의 능선 아래를 테뫼식산성(산 정산을 둘러 쌓은 성)이다. 계양산은 옛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진산이며,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한다. 이 산에 있는 만일사(萬日寺)에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시가 전하고, 그의 망해지(望海誌)에 있는 기문(記文)에는 이곳에서 인천과 통진이 모두 조망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계양산고성은 석축이고 둘레가 1,937척(尺)이라 하였고, 《문헌비고》와 《대동지지》에서는 안남산의 동남쪽에 있는 고성을 같은 규모로 기록하여 이것이 곧 계양산성임을 알수 있다. 계양산의 동쪽 지봉 능선부에서 부평 고읍쪽으로 석축이 무너진 상태로 군데군데 터가 있으며, 김포군과 경계를 이루는 장명이고개 남동쪽의 중심성(衆心城)과 함께 김포에서 부평으로 통하는 고갯길의 요새를 진정(鎭定)하는 위치에 축조되어 있다. 삼국시대 이래의 성터로 여겨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과 왜의 고니시(小西行長)군과의 치열한 싸움터였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현재는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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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계양구 문화공보실 032-450-5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