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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

경상좌수영성지 (慶尙左水營城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수량/면적 8,351㎡
지정(등록)일 1972.06.26
소 재 지 부산 수영구 망미동 광안동일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좌수영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총 지휘자가 머물던 진영(鎭營)으로, 원래는 부산포에 있었다가 여러 번 옮겨진 뒤, 효종 3년(1652) 다시 부산포로 옮겨져, 고종 32년(1895) 구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것은 숙종 18년(1692)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이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데 힘썼다.

일제시대 때 관리를 소홀히 하여 대부분이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좌수영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총 지휘자가 머물던 진영(鎭營)으로, 원래는 부산포에 있었다가 여러 번 옮겨진 뒤, 효종 3년(1652) 다시 부산포로 옮겨져, 고종 32년(1895) 구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것은 숙종 18년(1692)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이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데 힘썼다.

일제시대 때 관리를 소홀히 하여 대부분이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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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부산광역시 수영구 문화공보과 051-610-4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