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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포충사 (褒忠祠)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4.05.22
소 재 지 광주 남구 원산동 776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포충사관리사무소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광주광역시 남구 문화관광과 062-607-2332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1533~1592) · 종후(從厚,1554~1593) · 인후(因厚,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1554~1592) · 안영(安瑛,1564~1592)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 · 내외삼문 · 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 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忠孝堂) · 청사영당(晴沙影堂) · 전사청(典祀廳) · 고직사(庫直舍)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 4종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1533~1592) · 종후(從厚,1554~1593) · 인후(因厚,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1554~1592) · 안영(安瑛,1564~1592)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 · 내외삼문 · 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 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忠孝堂) · 청사영당(晴沙影堂) · 전사청(典祀廳) · 고직사(庫直舍)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 4종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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