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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기념물 제7호

조정만 묘 (趙正萬 墓)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1기/516.9㎡
지정(등록)일 1990.11.09
소 재 지 인천 남동구 도림동 산 46-3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임천조씨종중
관리자(관리단체) 남동구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조정만(1658∼1739) 선생의 묘소이다.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정이(定而), 호는 오재(寤齎)이다. 아버지는 합천군수 경망(景望)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로 식(寔)의 딸이다.

송준길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숙종 7년(1681)에 진사시에 장원 급제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듬해에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한 사건에 대해 성균관 유생들의 소두(疏頭)가 되어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94년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이어 공조, 호조의 낭관, 제용감, 군자감의 판관, 장악원정 등을 지냈다. 관직에 나아가서는 여러 관직을 거쳐 정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그는 경(經)·사(史)·백가서(百家書)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오재집』이 있다.

현재 도림동에 위치한 그의 묘역에는 묘비와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역 근처에는 높이 3.5m, 너비 1m의 이의현이 짓고 김진상이 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조정만(1658∼1739) 선생의 묘소이다.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정이(定而), 호는 오재(寤齎)이다. 아버지는 합천군수 경망(景望)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로 식(寔)의 딸이다.

송준길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숙종 7년(1681)에 진사시에 장원 급제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듬해에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한 사건에 대해 성균관 유생들의 소두(疏頭)가 되어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94년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이어 공조, 호조의 낭관, 제용감, 군자감의 판관, 장악원정 등을 지냈다. 관직에 나아가서는 여러 관직을 거쳐 정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그는 경(經)·사(史)·백가서(百家書)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오재집』이 있다.

현재 도림동에 위치한 그의 묘역에는 묘비와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역 근처에는 높이 3.5m, 너비 1m의 이의현이 짓고 김진상이 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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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남동구 문화체육과 032-453-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