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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호

조서강 묘 (趙瑞康 墓)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1기(2,660㎡)
지정(등록)일 1990.11.09
소 재 지 인천 서구 석남동 산119-2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배천조씨 종중
관리자(관리단체) 인천시 서구

경은(耕隱) 조서강은 조선개국 공신 조반의 아들로 태종14년(1415)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지내고 세종13년(1431)에 춘추관 기주관이 되어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우관원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441년에 도승지를 지냈으며, 1443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그의 만년에 이조참판을 그만두고 부친 조반의 별업(별장)인 가정(佳亭)에 은거하였다. 그가 은거하자 세종은 궁중화가를 보내 가정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이후 많은 선비들이 가정을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안평대군은 이를 모아 <석호가정별업도>라는 서화집을 만들기도 하였다. 세종 26년 3월 10일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쌀과 콩 각 30석, 종이 10련, 그리고 관곽을 부의로 내려 후하게 장사지내게 하였다.



그의 묘는 직사각형 기대석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둘레돌을 두른 봉분이 있는데 봉분은 전방후원묘로 되어있고 앞에는 묘비와 상석, 한 쌍의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비신과 기단이 일체형을 이루고 있는 묘비에는 가선대부 이조참판조공지묘라고 새겨져 있으며 한 송이의 연꽃을 엎어 놓은 것 같이 조각한 옥개석이 있고 비 후면에 새겨진 글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마멸되어 있다. 조서강 묘와 묘역에 설치된 석물들은 조선초기의 것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경은(耕隱) 조서강은 조선개국 공신 조반의 아들로 태종14년(1415)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지내고 세종13년(1431)에 춘추관 기주관이 되어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우관원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441년에 도승지를 지냈으며, 1443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그의 만년에 이조참판을 그만두고 부친 조반의 별업(별장)인 가정(佳亭)에 은거하였다. 그가 은거하자 세종은 궁중화가를 보내 가정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이후 많은 선비들이 가정을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안평대군은 이를 모아 <석호가정별업도>라는 서화집을 만들기도 하였다. 세종 26년 3월 10일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쌀과 콩 각 30석, 종이 10련, 그리고 관곽을 부의로 내려 후하게 장사지내게 하였다.



그의 묘는 직사각형 기대석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둘레돌을 두른 봉분이 있는데 봉분은 전방후원묘로 되어있고 앞에는 묘비와 상석, 한 쌍의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비신과 기단이 일체형을 이루고 있는 묘비에는 가선대부 이조참판조공지묘라고 새겨져 있으며 한 송이의 연꽃을 엎어 놓은 것 같이 조각한 옥개석이 있고 비 후면에 새겨진 글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마멸되어 있다. 조서강 묘와 묘역에 설치된 석물들은 조선초기의 것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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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서구 문화공보실 032-560-4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