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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9호

등메장 (등메장)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무형문화재
지정(등록)일 2002.05.06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시 대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37

등메는 침상이나 평상 위에 깔아 사용하는 자리를 말하며 보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 재료는 용수초(龍鬚草)라는 식물로 왕골과는 구분되며,우리나라의 논 또는 개울이나 습지에서 널리 자생한다. 가늘고 길며 단면이 둥근 줄기 안에 스펀지처럼 탄력 있는 심을 가진 풀이며,;골풀'로도 불린다. 현재 이 풀을 이용해 다양한 가물을 만드는 장인으로는 초고장(草藁匠)과 등메장이 있다. 초고장이나 완초장은 자리,돗자리,방석, 외에 동구리,합 등의 생활기물 및 장신구까지 제작하는 장인이 등메장이다.등메라는 용어는 골풀로 앞바탕을 짜고 뒷면에는 탄력을 위해 부들을 덧댄데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거기조車騎條>에 "수레의 휘장은 왕골자리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직관조職官條>에는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문적으로 자리를 만들던 장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에서는 사직신(社稷神)인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의 신위에 왕골자리르 깔았으며 왕실에서는 문석(文席)채석(彩席)화문대석(花文大席)을 사용하였다. 북송(北宋)의 사신 서긍(徐兢)은<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의 제품은)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으며,검은색 흰색이 서로 섞여 무늬를 이루고 침상에 까는 정교한 것은 매우 우수하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품질이어서 외국과의 교역품으로도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공장에 인장(茵匠)석장(席匠)이 있는데,인장은 장흥고(長興庫)에 8명이, 석장은 하삼도에만 총 338명의 외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 동지사가 파견될 때 많게는 한 번에 화문석 124장을 들여간다 할 만큼 우수한 특삼품이었다. 만화석(滿花席),만화방석(滿花方席),만화각색석,용문석(龍文席),화문석(花文席),잡채화문석,채화석 등의 왕골 제품은 궁중과 상류층에서 사용하였다.

등메는 그 제작기법 상 백석을 만드는 백석장(白席匠)과 무늬를 만드는 화문장(花紋匠)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돗자리틀에 날을 건 다음,날 사이에 바늘대로 골을 걸어서 좌우 각 두 번씩 넣어 바디로 짜 올리는 것이 백석(白席)이다.백석에 무늬를 놓고 부들로 맨 자리를 내공석(內供席)으로 하여 화석(花席) 밑에 받치고,가장자리는 바탕의 문양 색감에 따라 청색,흑색,자주색,갈색포로 회랑을 꾸민다.

문양의 종류는 수복강녕(壽福康寧)등의 문자나 기하문과 꽃문양을 도안화한 화문 등이 있으며,대부분 테두리르 두르고 중앙에 중심 문양을 넣고 있다. 문양을 넣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깔의 용수초가 필요하다. 흰색은 마령초를 다듬고 손질하여 사용하며,청,홍,흑 ,등과 함께 기본색이다. 최근 들어 자주 쓰이느 다양한 색깔 등은 용수초를 직접 염색하여 사용하는데 용수초는 천에 비해 염색이 잘 안되어 작업이 까다롭다. 자리를 짤 때 경사를 노출시키거나 숨겨서 제작하는 방법이 있는데,앞에 것을 노경소직(露經素織),뒤에 것을 은경밀직(隱經密織)으로 불러 구분하기도 했다. 당연히 은경밀직이 만듦새가 치밀하고 밀도가 높아 우수한 것으로 쳤다.

2002년 4월 23일에 최헌열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2017년 8월 10일에 명예보유자가 되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등메는 침상이나 평상 위에 깔아 사용하는 자리를 말하며 보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 재료는 용수초(龍鬚草)라는 식물로 왕골과는 구분되며,우리나라의 논 또는 개울이나 습지에서 널리 자생한다. 가늘고 길며 단면이 둥근 줄기 안에 스펀지처럼 탄력 있는 심을 가진 풀이며,;골풀'로도 불린다. 현재 이 풀을 이용해 다양한 가물을 만드는 장인으로는 초고장(草藁匠)과 등메장이 있다. 초고장이나 완초장은 자리,돗자리,방석, 외에 동구리,합 등의 생활기물 및 장신구까지 제작하는 장인이 등메장이다.등메라는 용어는 골풀로 앞바탕을 짜고 뒷면에는 탄력을 위해 부들을 덧댄데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거기조車騎條>에 "수레의 휘장은 왕골자리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직관조職官條>에는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문적으로 자리를 만들던 장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에서는 사직신(社稷神)인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의 신위에 왕골자리르 깔았으며 왕실에서는 문석(文席)채석(彩席)화문대석(花文大席)을 사용하였다. 북송(北宋)의 사신 서긍(徐兢)은<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의 제품은)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으며,검은색 흰색이 서로 섞여 무늬를 이루고 침상에 까는 정교한 것은 매우 우수하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품질이어서 외국과의 교역품으로도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공장에 인장(茵匠)석장(席匠)이 있는데,인장은 장흥고(長興庫)에 8명이, 석장은 하삼도에만 총 338명의 외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 동지사가 파견될 때 많게는 한 번에 화문석 124장을 들여간다 할 만큼 우수한 특삼품이었다. 만화석(滿花席),만화방석(滿花方席),만화각색석,용문석(龍文席),화문석(花文席),잡채화문석,채화석 등의 왕골 제품은 궁중과 상류층에서 사용하였다.

등메는 그 제작기법 상 백석을 만드는 백석장(白席匠)과 무늬를 만드는 화문장(花紋匠)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돗자리틀에 날을 건 다음,날 사이에 바늘대로 골을 걸어서 좌우 각 두 번씩 넣어 바디로 짜 올리는 것이 백석(白席)이다.백석에 무늬를 놓고 부들로 맨 자리를 내공석(內供席)으로 하여 화석(花席) 밑에 받치고,가장자리는 바탕의 문양 색감에 따라 청색,흑색,자주색,갈색포로 회랑을 꾸민다.

문양의 종류는 수복강녕(壽福康寧)등의 문자나 기하문과 꽃문양을 도안화한 화문 등이 있으며,대부분 테두리르 두르고 중앙에 중심 문양을 넣고 있다. 문양을 넣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깔의 용수초가 필요하다. 흰색은 마령초를 다듬고 손질하여 사용하며,청,홍,흑 ,등과 함께 기본색이다. 최근 들어 자주 쓰이느 다양한 색깔 등은 용수초를 직접 염색하여 사용하는데 용수초는 천에 비해 염색이 잘 안되어 작업이 까다롭다. 자리를 짤 때 경사를 노출시키거나 숨겨서 제작하는 방법이 있는데,앞에 것을 노경소직(露經素織),뒤에 것을 은경밀직(隱經密織)으로 불러 구분하기도 했다. 당연히 은경밀직이 만듦새가 치밀하고 밀도가 높아 우수한 것으로 쳤다.

2002년 4월 23일에 최헌열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2017년 8월 10일에 명예보유자가 되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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