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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고무 (東萊鼓舞)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무형문화재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1993.12.31
소 재 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동래고무는 부산시 동래구에 전승되는 북춤이다. 고려 전기 궁중악을 관장했던 교방청(敎坊廳)의 기생들에 의해 추어졌으나, 조선시대 때 동래감영의 교방으로 전해지면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동래고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사』「악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귀양살이를 하던 이혼이라는 양반이 바다에 떠내려오는 뗏목으로 북을 만든 것이 북춤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동래고무는 중앙에 큰 북을 놓고 4명의 무용수가 영산회상곡인 잔영산, 염불도드리, 타령군악에 맞추어 북을 치면서 춤을 추면, 다른 4명의 무용수가 지화자를 노래하면서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춤사위에는 머리사위·부림사위·맞춤사위·옆실이·평사위·팔수사위·상대무·북춤사위·팔자사위·인사태 등이 있다. 춤사위는 궁중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면서 단아한 편이고, 춤의 구성은 단조로우면서도 변화가 있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동래고무는 궁중의 정재(呈才)도 아니고 순수민속춤도 아닌 중간 장르의 춤으로서 교방무의 한 유형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현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 전승·보존에 힘쓰고 있다.

동래고무는 부산시 동래구에 전승되는 북춤이다. 고려 전기 궁중악을 관장했던 교방청(敎坊廳)의 기생들에 의해 추어졌으나, 조선시대 때 동래감영의 교방으로 전해지면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동래고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사』「악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귀양살이를 하던 이혼이라는 양반이 바다에 떠내려오는 뗏목으로 북을 만든 것이 북춤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동래고무는 중앙에 큰 북을 놓고 4명의 무용수가 영산회상곡인 잔영산, 염불도드리, 타령군악에 맞추어 북을 치면서 춤을 추면, 다른 4명의 무용수가 지화자를 노래하면서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춤사위에는 머리사위·부림사위·맞춤사위·옆실이·평사위·팔수사위·상대무·북춤사위·팔자사위·인사태 등이 있다. 춤사위는 궁중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면서 단아한 편이고, 춤의 구성은 단조로우면서도 변화가 있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동래고무는 궁중의 정재(呈才)도 아니고 순수민속춤도 아닌 중간 장르의 춤으로서 교방무의 한 유형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현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 전승·보존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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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공보과 051-550-4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