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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4호

흥천사 목조보살좌상 (興天寺 木造菩薩坐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보살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17.06.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101.5㎝의 중대형 보살상으로, 나무로 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보관은 정면을 향하여 날고 있는 두 마리의 봉황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화문(花文)과 연화문 장식 등이 붙어 있고, 상단에 다섯 개의 화염문과 측면에 좌우로 관대(冠帶)가 매달려 있다. 보관 겉면에 몇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장식 일부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머리 정상에 높은 보계[상투]가 있고, 보관 밑 이마에 머리카락이 단정히 처리되어 있으며, 보살의 머리카락이 귀를 타고 내려와 어깨 위에 세 가닥으로 늘어져 있다. 얼굴은 조선후기 제작된 불상에 비하여 역삼각형에 가까운 갸름하다. 머리는 어깨에 비하여 큰 편이지만,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넓어 안정된 신체비율을 보인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편이고, 선정(禪定)을 하듯이 가늘게 뜬 눈의 눈꼬리가 많이 올라가 있고, 코는 뾰족하고 콧등은 짧아 조선후기에 제작된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 된 인상과 다르다. 미간 사이에는 얼굴에 비해 큰 백호가 있다.

양 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무릎에 놓인 오른손과 어깨까지 치켜든 왼손에 연봉오리가 달린 줄기를 자연스럽게 들고 있다.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이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끝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상단이 자연스럽게 접혀 있어 연판형으로 처리된 17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보살상과 차이가 난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의 복장물은 이전에 대부분 없어졌고, 조성 시기와 연화질을 밝힐 수 있는 복장발원문도 남아있지 않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제작 시기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년명 불상이 수 백점 조사되어 양식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우선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신체비례에서 조선후기, 특히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보살상보다 머리가 크고 어깨가 좁은 편이다. 또한 보살상이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넓어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신체비례는 조선후기보다 조선전기에 유행했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15세기에 조성된 경북 영주 흑석사 불상(145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주사 불상(1482년) 과 달리 신체비율에 약간의 왜곡이 있고,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문경 대승사 불상(1586년) 등과 유사한 편이다. 또한 발견된 복장물 중에 ?묘법연화경?이 모두 16세기 간행되어 보살상의 조성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내부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양식적인 특징을 통하여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이 흥천사에 언제부터 봉안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전기에 왕실 후원 사찰로 유명한 흥천사는 1536년에 한성부에서 흥천사의 빈터를 직급에 따라 관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을 보면 16세기 중반에 완전히 폐사되었다. 이후 1799년에 스님들이 흥천사 중창을 발원한 후, 1853년(철종4) 5월에 구봉계장(九峰啓 壯)이 대웅전을 창건하고, 다른 사찰에서 불상들을 이운하여 삼존상으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101.5㎝의 중대형 보살상으로, 나무로 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보관은 정면을 향하여 날고 있는 두 마리의 봉황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화문(花文)과 연화문 장식 등이 붙어 있고, 상단에 다섯 개의 화염문과 측면에 좌우로 관대(冠帶)가 매달려 있다. 보관 겉면에 몇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장식 일부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머리 정상에 높은 보계[상투]가 있고, 보관 밑 이마에 머리카락이 단정히 처리되어 있으며, 보살의 머리카락이 귀를 타고 내려와 어깨 위에 세 가닥으로 늘어져 있다. 얼굴은 조선후기 제작된 불상에 비하여 역삼각형에 가까운 갸름하다. 머리는 어깨에 비하여 큰 편이지만,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넓어 안정된 신체비율을 보인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편이고, 선정(禪定)을 하듯이 가늘게 뜬 눈의 눈꼬리가 많이 올라가 있고, 코는 뾰족하고 콧등은 짧아 조선후기에 제작된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 된 인상과 다르다. 미간 사이에는 얼굴에 비해 큰 백호가 있다.

양 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무릎에 놓인 오른손과 어깨까지 치켜든 왼손에 연봉오리가 달린 줄기를 자연스럽게 들고 있다.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이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끝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상단이 자연스럽게 접혀 있어 연판형으로 처리된 17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보살상과 차이가 난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의 복장물은 이전에 대부분 없어졌고, 조성 시기와 연화질을 밝힐 수 있는 복장발원문도 남아있지 않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제작 시기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년명 불상이 수 백점 조사되어 양식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우선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신체비례에서 조선후기, 특히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보살상보다 머리가 크고 어깨가 좁은 편이다. 또한 보살상이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넓어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신체비례는 조선후기보다 조선전기에 유행했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15세기에 조성된 경북 영주 흑석사 불상(145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주사 불상(1482년) 과 달리 신체비율에 약간의 왜곡이 있고,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문경 대승사 불상(1586년) 등과 유사한 편이다. 또한 발견된 복장물 중에 ?묘법연화경?이 모두 16세기 간행되어 보살상의 조성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내부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양식적인 특징을 통하여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이 흥천사에 언제부터 봉안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전기에 왕실 후원 사찰로 유명한 흥천사는 1536년에 한성부에서 흥천사의 빈터를 직급에 따라 관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을 보면 16세기 중반에 완전히 폐사되었다. 이후 1799년에 스님들이 흥천사 중창을 발원한 후, 1853년(철종4) 5월에 구봉계장(九峰啓 壯)이 대웅전을 창건하고, 다른 사찰에서 불상들을 이운하여 삼존상으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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