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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0호

영천치일리인종태실 (永川治日里仁宗胎室)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2004.06.28
소 재 지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24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인종태실은 중종 16년(1521)에 조성되었다. 이후 인종이 죽고난 후 명종1년에 가봉(加封) 공사가 있었고 숙종 37년(1711)에는 수개(修改)가 있었다. 1928년에 일제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명목을 내세워, 54기의 태실을 경기도의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는데, 이때 인종태실도 태호(胎壺)를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다. 이때 옮겨진 것은 태항아리, 지석 1점 등이다.

현재 남아있는 석물은 귀롱대와 가봉비를 비롯한 석물들이 완형 혹은 파손되 상태로 남아있다.

인종태실은 가봉된 다른 어떤 태실보다 그 규모가 크고 각종 석조물의 장식이 화려하며 웅장하다. 또한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태실 조성양식과 조각기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인종태실은 중종 16년(1521)에 조성되었다. 이후 인종이 죽고난 후 명종1년에 가봉(加封) 공사가 있었고 숙종 37년(1711)에는 수개(修改)가 있었다. 1928년에 일제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명목을 내세워, 54기의 태실을 경기도의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는데, 이때 인종태실도 태호(胎壺)를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다. 이때 옮겨진 것은 태항아리, 지석 1점 등이다.

현재 남아있는 석물은 귀롱대와 가봉비를 비롯한 석물들이 완형 혹은 파손되 상태로 남아있다.

인종태실은 가봉된 다른 어떤 태실보다 그 규모가 크고 각종 석조물의 장식이 화려하며 웅장하다. 또한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태실 조성양식과 조각기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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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영천시 문화체육과 054-330-6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