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시도유형문화재 제332호

송시열 초상 (宋時烈 肖像)
이미지없음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2012.07.06
소 재 지 충북 제천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안***
관리자(관리단체)  

“우암송선생칠십사세진(尤庵宋先生七十四歲眞)”이라고 쓴 화제(畵題)가 있어 1680년 경의 모습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찬문은 김창협의 동생인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이 초상을 그렸음을 말해 준다. 김창협의 찬문과 왼쪽 위에 있는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찬문은 모두 채지홍(蔡之洪, 1683〜1741)의 글씨로 초상이 제작된 시기보다 후에 써 넣었거나 후대에 화상을 모사한 후 그 위에 다시 써 넣은 것이다.

유복 입은 초상화를 통해 우암의 이미지, 즉 개인의 존재감을 투영시킨 17세기 후반 초상으로서 이후 자아 의식을 반영한 여러 유형의 초상화가 발전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다는 점과 현존하는 5점의 초상 중 국보 제239호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더불어 가장 손꼽을 만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암송선생칠십사세진(尤庵宋先生七十四歲眞)”이라고 쓴 화제(畵題)가 있어 1680년 경의 모습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찬문은 김창협의 동생인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이 초상을 그렸음을 말해 준다. 김창협의 찬문과 왼쪽 위에 있는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찬문은 모두 채지홍(蔡之洪, 1683〜1741)의 글씨로 초상이 제작된 시기보다 후에 써 넣었거나 후대에 화상을 모사한 후 그 위에 다시 써 넣은 것이다.

유복 입은 초상화를 통해 우암의 이미지, 즉 개인의 존재감을 투영시킨 17세기 후반 초상으로서 이후 자아 의식을 반영한 여러 유형의 초상화가 발전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다는 점과 현존하는 5점의 초상 중 국보 제239호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더불어 가장 손꼽을 만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레이션

  • 한국어

목록
상 세 문 의 : 충북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1-5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