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시도유형문화재 제315호

곡성 서산사 목조 관음보살좌상 (谷城 西山寺 木造 觀音菩薩坐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보살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13.12.19
소 재 지 전라남도 곡성군 교촌길 71 (곡성읍, 서산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원통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원래 제작처는 성덕산 관음사의 대은암(大隱庵)이고 1706年(강희 45, 숙종 32)에 조성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관음사 원통전 소실의 혼란 와중에 1730년(옹정 8, 영조 6)에 옥과 성덕산 관음사 대은암의 중종으로 조성된 동종과 함께 화마를 피해 서산사로 옮겨 모셔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보살상에서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황초폭자(黃梢幅子: 노란 보자기)에 쌓은 후령통(候鈴筒),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사경, 『능엄경(楞嚴經)』 4책, 진언문 28장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이미 복장은 불상 개금시 개봉되어 원래의 모습은 훼손되어 있었다.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관음보살상이 1706년(강희 45, 숙종 32)에 진열(進悅)과 태원(太元) 두 스님이 조성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관음보살좌상의 원 봉안처는 전라좌도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대은암으로 이 보살상은 해천(海天) 스님이 대은암에 불상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불상 조성의 큰 소원을 품고 1706년 2월 25일에 만들기 시작하여 약 2개월의 기간을 거쳐 4월 5일에 완성하였고 4월 8일에 복장을 봉납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서산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발원문의 출현으로 불상 조성 동기, 봉안처, 조성시기, 조각승, 시주자, 관음사 주석 승려 등 거의 모든 사항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초반의 불교조각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귀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원통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원래 제작처는 성덕산 관음사의 대은암(大隱庵)이고 1706年(강희 45, 숙종 32)에 조성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관음사 원통전 소실의 혼란 와중에 1730년(옹정 8, 영조 6)에 옥과 성덕산 관음사 대은암의 중종으로 조성된 동종과 함께 화마를 피해 서산사로 옮겨 모셔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보살상에서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황초폭자(黃梢幅子: 노란 보자기)에 쌓은 후령통(候鈴筒),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사경, 『능엄경(楞嚴經)』 4책, 진언문 28장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이미 복장은 불상 개금시 개봉되어 원래의 모습은 훼손되어 있었다.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관음보살상이 1706년(강희 45, 숙종 32)에 진열(進悅)과 태원(太元) 두 스님이 조성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관음보살좌상의 원 봉안처는 전라좌도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대은암으로 이 보살상은 해천(海天) 스님이 대은암에 불상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불상 조성의 큰 소원을 품고 1706년 2월 25일에 만들기 시작하여 약 2개월의 기간을 거쳐 4월 5일에 완성하였고 4월 8일에 복장을 봉납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서산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발원문의 출현으로 불상 조성 동기, 봉안처, 조성시기, 조각승, 시주자, 관음사 주석 승려 등 거의 모든 사항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초반의 불교조각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귀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내레이션

  •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