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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0호

파주 용상사 석불좌상 (坡州 龍床寺 石佛坐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수량/면적 1존
지정(등록)일 2013.11.12
소 재 지 경기도 파주시 용상골길 403 (월롱면, 월롱산용상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한 용상사(龍床寺)는 고려 현종이 40만 거란군을 피해 피신했던 곳으로 귀주대첩 승리 후 나라가 평안해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 지어진 사찰이다. 그 뒤 덕은화주 (德隱化主)가 세종 27년(1445년)에 중건하였으며 이때 석불좌상을 인근 벽장굴에 조성해 봉안하였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 터에서 약간 떨어진 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다가 1967년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면서 서쪽에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상의 크기는 높이 61cm, 무릎너비 50cm이며, 얼굴은 장방형으로 몸에 비해 크게 표현되었으며 머 리 위에는 육계가 크게 솟아 있다. 얼굴에 비해 자그마한 몸체는 가슴에는 ‘ 卍’자 문양이 양각되어 있으며 옷주름은 비교적 간결하게 묘사되어 있다. 자세는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땅 을 가르키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얹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니, 이는 석가 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켰 음을 알리는 수인이다.

석불좌상 하부 바닥면에 ‘정통십년명석불좌상 (正統十年銘石佛坐像)’이라는 명문이 있어 덕은에 의해 용상사가 중창될 때인 1445년(세종 10)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초기의 불상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2016년 2월 용상사 대웅보전 화재로 불상이 훼손되어 보존처리 후 보관중이다.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한 용상사(龍床寺)는 고려 현종이 40만 거란군을 피해 피신했던 곳으로 귀주대첩 승리 후 나라가 평안해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 지어진 사찰이다. 그 뒤 덕은화주 (德隱化主)가 세종 27년(1445년)에 중건하였으며 이때 석불좌상을 인근 벽장굴에 조성해 봉안하였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 터에서 약간 떨어진 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다가 1967년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면서 서쪽에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상의 크기는 높이 61cm, 무릎너비 50cm이며, 얼굴은 장방형으로 몸에 비해 크게 표현되었으며 머 리 위에는 육계가 크게 솟아 있다. 얼굴에 비해 자그마한 몸체는 가슴에는 ‘ 卍’자 문양이 양각되어 있으며 옷주름은 비교적 간결하게 묘사되어 있다. 자세는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땅 을 가르키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얹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니, 이는 석가 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켰 음을 알리는 수인이다.

석불좌상 하부 바닥면에 ‘정통십년명석불좌상 (正統十年銘石佛坐像)’이라는 명문이 있어 덕은에 의해 용상사가 중창될 때인 1445년(세종 10)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초기의 불상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2016년 2월 용상사 대웅보전 화재로 불상이 훼손되어 보존처리 후 보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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