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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1호

지장암 감로도 (地藏庵 甘露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불도
수량/면적 1幅
지정(등록)일 2008.07.10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성곽동길 57-2 (창신동, 지장암)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감로도는 1889년에 조성되어 경기도 광주 영장산(靈壯山,현 성남시 분당구) 법륜사(法輪寺, 현 폐사)에 봉안되었던 감로도로서, 조선말기 서울지역 사찰의 중요 시주자였던 강재희(姜在喜)가 1924년에 지장암을 중창하면서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법운 장□(法雲 壯□)와 허곡긍순(虛谷亘順), 석조(奭照)가 함께 그렸다. 그림의 상태는 양호하지만 하단 부분이 많이 퇴색되는 등 손상이 있다. 현재는 지장암 대웅전 향우측벽에 봉안되어 있는데, 가로 231cm, 세로 183.5cm의 규모로 견본바탕에 채색되어 있다.

가로로 긴 화면의 상단에는 칠여래(七如來)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으며, 좌측에는 아미타 삼존(阿彌陀三尊)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來迎)하는 모습과 왕후장상(王侯將相), 선왕선후(先王先后), 북채를 든 뇌신(雷神), 우측에는 석장을 든 지장보살과 번(幡)을 든 인로왕보살 및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칠여래는 커다란 백색의 신광을 배경으로 각각 합장한 채 정면을 향해 나란히 서있으며, 그 아래로는 성대하게 차려진 제단이 놓여있다. 제단은 좌우에 붉은색의 높은 기둥을 세운 후 南無百億化身佛(석가모니), 南無淸淨法身佛(비로자나불), 南無圓滿報身佛(노사나불)의 이름이 적힌 삼신불번(三身佛幡)을 늘어뜨리고 갖가지 꽃과 공양물을 가득 배설하였는데, 법신 비로자나불번의 좌우에는 ‘봉위주상전하성수만세국태민안법륜전(奉爲主上殿下聖壽萬歲國泰民安法輪轉)’(향우), ‘보고십방제찰해소유일체군생류(普告十方諸刹海所有一切群生類)’(향좌)’라 적혀있다. 제단으로 이르는 돌계단 아래 좌우의 커다란 화병 안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모란이 가득 꽂혀있어 화려하게 치장된 당시 제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며, 제단의 우측에는 천막 안에서 스님들이 나란히 모여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작법승(作法僧)들이 큰북과 바라 등을 두드리며 의식을 집전하는 모습, 승무(僧舞)를 추는 모습, 커다란 공양물을 머리에 이거나 들고서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화면의 하단 중앙에는 한 쌍의 아귀(餓鬼)가 서로 마주보고 꿇어앉아 있는데, 송곳니를 들어낸 큰 입과 위로 뻗친 머리카락, 커다란 눈, 거친 턱수염 등 아귀의 특징을 잘 묘사하였다. 한편 아귀의 좌우로는 산악과 수목으로 분리된 화면 속에 세속의 다양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한복 입은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싸우는 장면,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광대가 거꾸로 서는 묘기를 부리고 초랭이가 부채를 들고 춤추는 장면, 죽방울 놀이 하는 장면, 서당모습, 밭가는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음식을 먹거나 술을 받는 모습, 물건을 파는 모습 등은 당시 장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여기에 표현된 풍속장면들은 주로 장례나 영가천도 등의 행사와 관련된 장면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수륙화로서의 감로도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화면 우측으로는 뇌신을 표현한 화염 아래로 우산을 쓴 인물과 뱀에게 쫓기는 장면 등 화엄경 관세음보살보문품(法華經 觀世音菩薩普門品)의 구제난(救濟難) 장면등과 더불어 농사짓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병자를 진료하는 모습, 소고 등을 갖고 무리지어 노는 모습, 일하러 가거나 장터에 가는 모습 등의 다양한 일상생활과 죄인들을 벌하는 모습, 전쟁 장면 등을 표현하였다.

채색은 전체적으로 적색과 녹색 위주의 채색으로 인한 보색 효과와 더불어 양청색이 주는 강조와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 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가 생기 있는 분위기로 일관되고 있다. 이외에도 황색, 백색, 청색 등이 어우러져 화려한 색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감로도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 경기지역에서 유행한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성 당시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의 생활상 등 수륙제 의식(水陸齋 儀式)과 생활상을 충실히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감로도는 현재 수락산 감로도(1868년)를 비롯하여 경국사 감로도(1887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봉은사 감로도(1892), 청룡사 감로도(1898년), 보광사 감로도(1898년) 등에 남아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 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가 생기 있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을 그린 화승 중 허곡 긍순(虛谷 亘順)은 1887년에 이와 동일한 도상의 서울 미타사 감로도 제작에 참여한 바 있으며, 3년 후에는 봉은사 대웅전 감로도(1892년)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 불화는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지역 감로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감로도는 1889년에 조성되어 경기도 광주 영장산(靈壯山,현 성남시 분당구) 법륜사(法輪寺, 현 폐사)에 봉안되었던 감로도로서, 조선말기 서울지역 사찰의 중요 시주자였던 강재희(姜在喜)가 1924년에 지장암을 중창하면서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법운 장□(法雲 壯□)와 허곡긍순(虛谷亘順), 석조(奭照)가 함께 그렸다. 그림의 상태는 양호하지만 하단 부분이 많이 퇴색되는 등 손상이 있다. 현재는 지장암 대웅전 향우측벽에 봉안되어 있는데, 가로 231cm, 세로 183.5cm의 규모로 견본바탕에 채색되어 있다.

가로로 긴 화면의 상단에는 칠여래(七如來)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으며, 좌측에는 아미타 삼존(阿彌陀三尊)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來迎)하는 모습과 왕후장상(王侯將相), 선왕선후(先王先后), 북채를 든 뇌신(雷神), 우측에는 석장을 든 지장보살과 번(幡)을 든 인로왕보살 및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칠여래는 커다란 백색의 신광을 배경으로 각각 합장한 채 정면을 향해 나란히 서있으며, 그 아래로는 성대하게 차려진 제단이 놓여있다. 제단은 좌우에 붉은색의 높은 기둥을 세운 후 南無百億化身佛(석가모니), 南無淸淨法身佛(비로자나불), 南無圓滿報身佛(노사나불)의 이름이 적힌 삼신불번(三身佛幡)을 늘어뜨리고 갖가지 꽃과 공양물을 가득 배설하였는데, 법신 비로자나불번의 좌우에는 ‘봉위주상전하성수만세국태민안법륜전(奉爲主上殿下聖壽萬歲國泰民安法輪轉)’(향우), ‘보고십방제찰해소유일체군생류(普告十方諸刹海所有一切群生類)’(향좌)’라 적혀있다. 제단으로 이르는 돌계단 아래 좌우의 커다란 화병 안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모란이 가득 꽂혀있어 화려하게 치장된 당시 제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며, 제단의 우측에는 천막 안에서 스님들이 나란히 모여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작법승(作法僧)들이 큰북과 바라 등을 두드리며 의식을 집전하는 모습, 승무(僧舞)를 추는 모습, 커다란 공양물을 머리에 이거나 들고서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화면의 하단 중앙에는 한 쌍의 아귀(餓鬼)가 서로 마주보고 꿇어앉아 있는데, 송곳니를 들어낸 큰 입과 위로 뻗친 머리카락, 커다란 눈, 거친 턱수염 등 아귀의 특징을 잘 묘사하였다. 한편 아귀의 좌우로는 산악과 수목으로 분리된 화면 속에 세속의 다양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한복 입은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싸우는 장면,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광대가 거꾸로 서는 묘기를 부리고 초랭이가 부채를 들고 춤추는 장면, 죽방울 놀이 하는 장면, 서당모습, 밭가는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음식을 먹거나 술을 받는 모습, 물건을 파는 모습 등은 당시 장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여기에 표현된 풍속장면들은 주로 장례나 영가천도 등의 행사와 관련된 장면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수륙화로서의 감로도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화면 우측으로는 뇌신을 표현한 화염 아래로 우산을 쓴 인물과 뱀에게 쫓기는 장면 등 화엄경 관세음보살보문품(法華經 觀世音菩薩普門品)의 구제난(救濟難) 장면등과 더불어 농사짓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병자를 진료하는 모습, 소고 등을 갖고 무리지어 노는 모습, 일하러 가거나 장터에 가는 모습 등의 다양한 일상생활과 죄인들을 벌하는 모습, 전쟁 장면 등을 표현하였다.

채색은 전체적으로 적색과 녹색 위주의 채색으로 인한 보색 효과와 더불어 양청색이 주는 강조와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 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가 생기 있는 분위기로 일관되고 있다. 이외에도 황색, 백색, 청색 등이 어우러져 화려한 색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감로도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 경기지역에서 유행한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성 당시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의 생활상 등 수륙제 의식(水陸齋 儀式)과 생활상을 충실히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감로도는 현재 수락산 감로도(1868년)를 비롯하여 경국사 감로도(1887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봉은사 감로도(1892), 청룡사 감로도(1898년), 보광사 감로도(1898년) 등에 남아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 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가 생기 있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을 그린 화승 중 허곡 긍순(虛谷 亘順)은 1887년에 이와 동일한 도상의 서울 미타사 감로도 제작에 참여한 바 있으며, 3년 후에는 봉은사 대웅전 감로도(1892년)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 불화는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지역 감로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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