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시도유형문화재 제270호

지장암 신중도 (地藏庵 神衆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불도
수량/면적 1幅
지정(등록)일 2008.07.10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성곽동길 57-2 (창신동, 지장암)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불화는 1889년에 조성되어 경기도 광주 영장산(靈壯山,현 성남시 분당구) 법륜사(法輪寺, 현 폐사)에 봉안되었던 신중도로서, 지장암의 중창주인 강재희(姜在喜)가 1924년에 지장암을 중창하면서 감로도(1889년)와 함께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금어(金魚) 완송 종현(玩松 宗顕), 완명 응기(玩明 應基), 편수 (片手) 비구(比丘) 석조(奭照)가 함께 그렸다.

화면은 가로가 긴 직사각형의 화면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한 많은 신중들을 표현하였다. 상단에는 범천과 제석천, 일월천자, 주악천인(奏樂天人)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범천과 제석천은 보살의(菩薩衣)에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활짝 핀 백련과 모란을 들고 정면을 향해 서있는데, 신광 전체를 백색으로 칠하여 밝은 느낌을 준다. 범천과 제석천 바로 아래에는 붉은 색의 해와 흰색의 달이 그려진 관을 쓴 일궁천자(日宮天子)와 월궁천자(月宮天子)가 중앙을 향해 서있으며, 이들 주위로 당(幢)ㆍ번(幡) 등의 장엄구를 든 동자와 천인 및 악기를 연주하는 동자들이 배치되었다.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천룡팔부(天龍八部)가 표현되었다. 중앙에 큼직하게 표현된 위태천은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튼 채 두 손을 가운데로 모아 금색의 삼지창을 세로로 들고 있는데, 화려한 깃털장식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은 천룡팔부의 수장으로서의 위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이목구비는 세필의 선묘(線描)로 가늘게 그려져 있다. 위태천의 좌우로는 부채를 든 산신(山神)과 건(巾)을 쓴 조왕신(竈王神)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무기를 든 천룡팔부가 시립하였다.

채색은 적색과 녹색, 청색, 흰색, 황색, 금색 등이 사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화면에 권속들이 꽉 차서 다소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범천, 제석천의 신광과 권속의 얼굴을 백색으로 칠하여 한결 밝은 느낌을 준다. 무기를 비롯하여 갑옷 등에는 금박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특히 청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 신중도를 그린 화승 중 석조(奭照)는 같은 해 감로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이 불화는 1889년에 금어(金魚) 완송 종현(玩松 宗顕), 완명 응기(玩明 應基), 편수(片手) 비구(比丘) 석조(奭照)가 조성한 신중도로서 경선당 응석이 출초한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1867년), 성북구 미타사 대웅전 신중도(1873년), 경국사 극락보전 신중도(1887) 등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한 것이다. 천부중과 천룡팔부를 한 폭에 묘사한 형식이라든가, 산신과 조왕신이 위태천의 협시로 등장하는 점, 주악천녀의 모습 등은 전형적인 19세기 신중탱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가로를 길게 하여 인물을 짜임새 있게 배치한 점은 이 그림을 그린 화승이 전통적인 초본을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변화 있는 도상을 만들어 내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19세기 서울지역 신중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불화는 1889년에 조성되어 경기도 광주 영장산(靈壯山,현 성남시 분당구) 법륜사(法輪寺, 현 폐사)에 봉안되었던 신중도로서, 지장암의 중창주인 강재희(姜在喜)가 1924년에 지장암을 중창하면서 감로도(1889년)와 함께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금어(金魚) 완송 종현(玩松 宗顕), 완명 응기(玩明 應基), 편수 (片手) 비구(比丘) 석조(奭照)가 함께 그렸다.

화면은 가로가 긴 직사각형의 화면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한 많은 신중들을 표현하였다. 상단에는 범천과 제석천, 일월천자, 주악천인(奏樂天人)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범천과 제석천은 보살의(菩薩衣)에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활짝 핀 백련과 모란을 들고 정면을 향해 서있는데, 신광 전체를 백색으로 칠하여 밝은 느낌을 준다. 범천과 제석천 바로 아래에는 붉은 색의 해와 흰색의 달이 그려진 관을 쓴 일궁천자(日宮天子)와 월궁천자(月宮天子)가 중앙을 향해 서있으며, 이들 주위로 당(幢)ㆍ번(幡) 등의 장엄구를 든 동자와 천인 및 악기를 연주하는 동자들이 배치되었다.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천룡팔부(天龍八部)가 표현되었다. 중앙에 큼직하게 표현된 위태천은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튼 채 두 손을 가운데로 모아 금색의 삼지창을 세로로 들고 있는데, 화려한 깃털장식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은 천룡팔부의 수장으로서의 위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이목구비는 세필의 선묘(線描)로 가늘게 그려져 있다. 위태천의 좌우로는 부채를 든 산신(山神)과 건(巾)을 쓴 조왕신(竈王神)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무기를 든 천룡팔부가 시립하였다.

채색은 적색과 녹색, 청색, 흰색, 황색, 금색 등이 사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화면에 권속들이 꽉 차서 다소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범천, 제석천의 신광과 권속의 얼굴을 백색으로 칠하여 한결 밝은 느낌을 준다. 무기를 비롯하여 갑옷 등에는 금박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특히 청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 신중도를 그린 화승 중 석조(奭照)는 같은 해 감로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이 불화는 1889년에 금어(金魚) 완송 종현(玩松 宗顕), 완명 응기(玩明 應基), 편수(片手) 비구(比丘) 석조(奭照)가 조성한 신중도로서 경선당 응석이 출초한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1867년), 성북구 미타사 대웅전 신중도(1873년), 경국사 극락보전 신중도(1887) 등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한 것이다. 천부중과 천룡팔부를 한 폭에 묘사한 형식이라든가, 산신과 조왕신이 위태천의 협시로 등장하는 점, 주악천녀의 모습 등은 전형적인 19세기 신중탱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가로를 길게 하여 인물을 짜임새 있게 배치한 점은 이 그림을 그린 화승이 전통적인 초본을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변화 있는 도상을 만들어 내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19세기 서울지역 신중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레이션

  •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