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시도유형문화재 제187호

진천 정철 신도비 (鎭川 鄭澈 神道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144
지정(등록)일 1996.01.05
소 재 지 충북 진천군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로 유명한 송강 정철(1536∼1593)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정철은 26세 되던 명종 16년(1561) 진사시에 1등을 하였고 이듬해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여 수많은 관리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시조, 가사, 한시 등 많은 작품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등을 지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문은 숙종 10년(1684) 문정공 송시열 선생이 글을 지었으며, 김수증 선생이 글씨를 썼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로 유명한 송강 정철(1536∼1593)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정철은 26세 되던 명종 16년(1561) 진사시에 1등을 하였고 이듬해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여 수많은 관리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시조, 가사, 한시 등 많은 작품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등을 지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문은 숙종 10년(1684) 문정공 송시열 선생이 글을 지었으며, 김수증 선생이 글씨를 썼다.

내레이션

  •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