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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눌재강수유고 목판 (訥齋江叟遺稿 木板)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판목류
수량/면적 31매
지정(등록)일 1995.06.30
소 재 지 충북 청주시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밀양 박씨 문중에서 조선 현종 7년(1666)에 눌재 박증영(1464∼1493)과 그의 아들 강수 박훈(1484∼1540)의 시문집을 만들기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송시열이 지은 서문과『눌재·강수유고』문필을 모아 1책으로 엮었다.

박증영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1483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 등의 벼슬을 했다. 문장에 뛰어나 이름을 떨쳤고, 매우 청렴하여 사람들이 늘 존경하였다. 그의 아들 박훈은 1519년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까지 올랐고, 나라의 그릇 즉 ‘국기(國器)’라는 명성을 들었다.

판목은 그동안 청원군 공효사에 소장하다가 1982년부터 강외초등학교 향토사자료관에 전시되어 왔는데, 1993년부터 청주대학교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소장하고 있다. 이 판목은 본래 38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7장이 없어지고 현재 31장이 남아있다.

『눌재강수유고』는 1902년에 속간한 활자본인데 현재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나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이 판목은 아직 그 인쇄본이 발견되지 않은 희귀자료로 문화재적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밀양 박씨 문중에서 조선 현종 7년(1666)에 눌재 박증영(1464∼1493)과 그의 아들 강수 박훈(1484∼1540)의 시문집을 만들기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송시열이 지은 서문과『눌재·강수유고』문필을 모아 1책으로 엮었다.

박증영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1483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 등의 벼슬을 했다. 문장에 뛰어나 이름을 떨쳤고, 매우 청렴하여 사람들이 늘 존경하였다. 그의 아들 박훈은 1519년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까지 올랐고, 나라의 그릇 즉 ‘국기(國器)’라는 명성을 들었다.

판목은 그동안 청원군 공효사에 소장하다가 1982년부터 강외초등학교 향토사자료관에 전시되어 왔는데, 1993년부터 청주대학교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소장하고 있다. 이 판목은 본래 38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7장이 없어지고 현재 31장이 남아있다.

『눌재강수유고』는 1902년에 속간한 활자본인데 현재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나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이 판목은 아직 그 인쇄본이 발견되지 않은 희귀자료로 문화재적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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