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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76호

남궁찬묘석상 (南宮璨墓石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조각 / 능묘조각 / 석인
수량/면적 2기
지정(등록)일 1999.11.19
소 재 지 전북 익산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조선 전기의 문신인 남궁찬 선생의 묘앞에 자리하고 있는 2기의 석상이다.

남궁찬은 성종 8년(1477)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성종 20년(1489) 문과에 급제하여,『성종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제주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연산군 10년(1504)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지방에 나갔으나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

이 석상 2기는 문신의 형상으로, 남쪽과 북쪽에 각각 놓여 있다. 비교적 머리가 크고 눈은 튀어나왔으며 코는 두툼하고 턱을 내밀고 있다. 옷은 도포를 걸친 모습으로 선을 얇게 조각하였고 양손은 소매자락 속에 넣고 있다.

크기가 크고 조각수법도 비교적 뛰어나, 조선 중종 년간(재위 1506∼1544)인 16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남궁찬 선생의 묘앞에 자리하고 있는 2기의 석상이다.

남궁찬은 성종 8년(1477)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성종 20년(1489) 문과에 급제하여,『성종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제주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연산군 10년(1504)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지방에 나갔으나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

이 석상 2기는 문신의 형상으로, 남쪽과 북쪽에 각각 놓여 있다. 비교적 머리가 크고 눈은 튀어나왔으며 코는 두툼하고 턱을 내밀고 있다. 옷은 도포를 걸친 모습으로 선을 얇게 조각하였고 양손은 소매자락 속에 넣고 있다.

크기가 크고 조각수법도 비교적 뛰어나, 조선 중종 년간(재위 1506∼1544)인 16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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